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16> 31년 이어온 빼빼로 사랑 '집단 기억' 때문?

다양한 빼빼로 상품들 /사진제공=롯데제과

11월 11일. 오늘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초콜릿이 묻은 막대과자 ‘빼빼로’죠. 지난 10일 ‘빼빼로 데이’를 하루 앞두고 집 근처 대형마트를 찾았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건 초코 막대과자로 쌓은 탑. 목 좋은 자리에 빼곡히 들어찬 상품들이 채워놓기 무섭게 장바구니에 담깁니다. 1983년 4월 출시된 롯데제과의 빼빼로는 31년간 인기가 식지 않는 장수과자로 단연 효자상품 중 하나입니다. 출시 첫해 매출 40억원으로 시작해 90년대 중반부터 급성장을 계속 하더니 지난해에는 무려 800억원 어치가 팔려나갔습니다.

‘빼빼로 데이’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보편적으로 알려진 내용은 90년대 중반 부산 등 경남지역 여중생들이 ‘빼빼로처럼 날씬해지자’며 주고받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롯데제과는 마케팅을 위해 자체 기획했던 일이 아니라고 얘기합니다만, 시작한 게 아닐지라도 기회를 제대로 활용한 건 분명해 보입니다. 최근 롯데마트가 분석한 평균 매출신장률 자료에 따르면 빼빼로 데이를 앞둔 막대형 과자 매출(전/후 7일간의 매출을 비교)이 평소의 84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발렌타인 초콜릿은 10배, 화이트데이 때 사탕은 8배 더 팔렸다고 하니 ‘ㅇㅇ데이’라고 다 같은 데이는 아닌가 봅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결과가 판매 대상과 제품 가격의 차이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발렌타인·화이트데이는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므로 연인 등 대부분 한 사람만을 위해 제품을 구매하는 반면 빼빼로데이 때는 연인은 물론이고 친구, 선생님까지 주변 여러 사람을 위해 다량으로 사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격적인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1통에 1,000~2,000원, 부담 없는 가격 덕에 기분 좋은 소소한 선물로 제격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빼빼로의 아성을 저렴한 가격과 타겟층 확대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마케팅 학자들은 “청소기는 후버, 자동차는 포드”와 같이 보편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는 브랜드들의 공통점이 ‘집단 기억’(Collective memory)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아이폰과 같은 브랜드는 미국인에게 단순한 스마트폰이 아니라 거의 문화적인 기물에 가깝습니다. 얼마 전 어느 마케팅 전문가는 트위터 분석 결과를 인용하면서 재미있는 사례를 인용한 바 있습니다. “아이폰과 어그부츠 그리고 스타벅스는 미국 백인 소녀의 상징”이라는 문구입니다. 하나의 제품이 단순 기능이나 속성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상징적 의미를 갖는 도구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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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비추어 보면 빼빼로는 ‘집단 기억’ 속에서 우리 국민들이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과자라는 이미지와 함께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볼 수 있습니다. 부담 없는 값을 지불하고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매개체라는 것이죠. 게다가 제품 자체가 하나의 선물로 각인되어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상상력이 깃들여 있습니다. 선물은 그 효과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이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하죠. 마찬가지로 빼빼로도 그것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어떤 감정을 갖게 될 지 알기 어려운, 재미있는 상품입니다.

그러고 보면 일찍이 롯데의 창업주인 신격호 회장이 회사 이름을 지은 과정도 일종의 ‘집단 기억’ 마케팅입니다. 문학을 좋아했던 신 회장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샤를로테’의 이름을 따 회사 명칭으로 했다고 합니다. 중고등학교 때 그 작품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여성적 이미지와 우아한 발음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것입니다.

어쩌면 창조경제도 이런 집단 기억과 상상력에 기반한 문화의 힘에서 그 모티브를 찾아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는 독보적인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기업 하나가 독자적인 시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독점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막힌 것은 소비자들의 일상과 습관 속에 정착된 브랜드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측할 수 없는 기쁨을 주는 브랜드, 선물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브랜드가 늘어난다면 창조 경제 실현도 머지 않은 비전이 될 겁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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