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힘받는 '美 공적자금 투입'…사용방안은 엇갈려

'서민 지원에 써야' VS "모기지 채권 인수"<br>백악관 공식적으론 공적자금 투입 반대 입장속<br>민주당 "차압위기 처한 주택소유자 구제가 먼저"<br>월가선 "정리신탁공사 세워 부실자산 털어내야"



최종 해법은 공적자금 투입인가. 1년간 끌어온 서브프라임발 신용위기를 확실히 진정시킬 방안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공적 자금 투입은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과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된 것으로 최근 들어 조지 W 부시 행정부 내부에서도 이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리 인하와 유동성 지원, 모기지 이자율 동결 등 지금까지의 대증 요법만으로는 부실 사태를 진화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일단 공적자금 투입을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공적투입과 관련, “나쁜 정책 결정은 득을 주기보다는 해를 더 미칠 수 있다”며 반대입장을 보였다.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 논란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부실의 연장 내지 더 큰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다. 그러나 부실의 진앙지를 직접 도려내는 외과적 수술이 없는 한 신용 금융 시스템 붕괴라는 총체적 위기에 빠지고, 경기침체의 골을 더욱 패이게 할 우려가 커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공적자금을 동원한다면 지난 1980년대 말 저축대부조합(S&L) 파산사태로 1,230억 달러를 투입한 지 20년 만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4월 의회가 열리면 부시 행정부가 의회와 타협 점을 찾을 것”이라며 공적자금 투입 가능성에 더 무게를 뒀다. 미국 내에서는 공적자금 투입과 관련해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8년 만에 정권 교체를 노리는 민주당은 월가 금융기관 구제보다는 차압위기에 처한 서민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크리스토프 도드 상원 은행위원장과 바니 플랭크 하원 금융위원장은 각각 3,000억 달러와 4,000억 달러 규모의 공적자금 투입방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두 가지 법안은 자금 투입 규모는 차이가 있지만, 접근 방식이나 처방은 같다. 구제 대상은 주택 가치가 모기지 보다 떨어져 팔리지도 않고 낮은 금리로 갈아타는 리파이낸싱이 어려운 주택소유자다. 연방주택청(FHA)이 공적자금을 재원으로 보증을 서주면 FHA 지정 은행은 원금 일부를 탕감해주고 낮은 금리로 새로운 모기지를 제공하는 방안이다. 5년 이내에 집을 팔 경우 주택 가격 상승분은 은행과 주택소유자가 나누도록 했다. 이 방안은 현재의 부실 모기지 채권을 정리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발생할 추가 부실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월가 금융기관도 간접적인 수혜를 받는다. 특히 패닉 상태에 빠진 모기지 채권 시장 안정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방안은 부시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장을 맡았던 글렌 허바드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장이 적극 지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 성향의 학자들이 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고, 그가 얼마 전까지 백악관 경제 참모였다는 점에서 허바드 교수의 촉구는 상당한 무게가 실린다. 허바드 교수는 지난 24일 폭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재무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앞서 “차압위기의 주택소유자에게 FHA가 보증을 서고 리파이낸싱 길을 열어줘 대규모 주택차압 사태를 막아야 한다”고도 지적한 바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와 로버트 루빈 씨티그룹 회장도 공적자금 투입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지난 24일 주택시장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비상실무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는 등 최소 300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 경기부양책 마련을 부시 행정부에 촉구했다. 월가 금융기관들은 주택시장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 보다는 모기지 채권과 유동화증권(MBS) 인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는 부실채권을 인수할 가칭 정리신탁공사(RTC)를 설립하자는 안과 FRB가 부실 채권을 직접 사들이는 방안 등 두 가지가 거론된다. 채권투자회사인 핌코의 빌 그로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정리신탁공사(RTC)와 같은 공공 기관을 설립, 모기지 채권을 사들이는 방안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6조 달러 규모에 이르는 모기지 채권 가운데 일부를 RTC등 공공기관이 인수해 금융기관의 부실 자산을 털어내고, 금융시장을 정상화하자는 주장이다. RTC는 지난 80년대 말 저축대부조합(S&L) 파산사태 당시 부실자산 처리를 전담한 정부기관이다. FRB가 부실 자산을 직접 사들이는 방안도 제기된다. 국민 세금, 즉 재정이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다는 점에서 엄밀한 의미의 공적자금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가치가 액면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모기지 채권을 FRB가 사들인다면 중앙은행의 손실은 불가피하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지난 22일 FRB와 영국중앙은행(BOE), 유럽중앙은행(ECB)이 MBS를 대량 매입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월가의 기대감이 커졌다. FRB가 즉각 부인했으나, 중앙은행의 추가 개입설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잇단 금리인하에도 꿈적도 않던 모기지 채권 금리(30년물)가 최근 5%대로 떨어지면서 미 재무부채권(TB)과의 금리격차(스프레드)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공적자금 투입 또는 FRB의 모기지 채권 인수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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