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국가대표급 수학자 키워야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과 교수 - 다시


'골방 속의 괴짜'라는 일반적 인식과 달리 대부분의 수학자는 다재다능하며 다른 길로부터의 유혹을 뿌리쳐야 하는 힘든 결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블레즈 파스칼은 신학을 위해 수학을 버렸고 프리먼 다이슨은 물리학의 길을 선택했으며 에바리스트 갈루아는 혁명의 소용돌이에 투신했고 제임스 사이먼스는 금융의 새 역사를 만들었다. 한편 유혹을 이겨낸 수학자들도 모두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하는데 20세기 가장 위대한 천재 수학자로 꼽히는 장피에르 세르, 마이클 아티야도 젊은 시절 수학을 포기할 뻔했던 기억을 수줍게 고백한 바 있다. 수학은 한국 중고등학생들뿐만 아니라 인류 최고의 천재들에게도 벅찬 좌절을 경험하게 한다.

수학영재들 연구 대신 사회진출 선택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는 인간이 무엇 때문에 행동하는가 하는 질문을 탐구한다. 체스 경기 결과에 따라 엄청난 쾌락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한계를 뛰어넘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정신의학의 첨단 성과를 활용한 주인공의 직접적 경험은 알 수 없지만 많은 수학자들은 비슷한 경험을 한두 번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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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불교에 정통한 한 스님은 초선 삼매의 구성요소 중 하나인 '피티'와 비슷하다고 했다. 피티는 사막을 여행하던 나그네가 오아시스를 만났을 때의 희열 같은 것으로 몇달씩 때로는 몇년씩 고민하던 문제의 해결책이 벼락처럼 떠올랐을 때의 느낌과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유레카를 외치며 발가벗고 거리를 뛰어다닐 정도의 즐거움이 얼마나 대단한지 상상해보라. 정상의 학자들이 지칠 줄 모르고 난제에 매달리게 되는 동력은 무엇이겠는가.

최근 한국 수학영재들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를 휩쓸 만큼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수학올림피아드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인의 수가 적지 않다. 불과 20여년 만에, 비유하자면 17세 이하 유소년팀에서는 월드컵 우승국이 된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이들 가운데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도 수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능이 뛰어난 만큼 유혹의 크기도 커 국가대표급 영재 중 상당수가 월스트리트에 진출하기도 하고 계리사나 변호사 같은 직종으로 갈아타기도 한다. 뛰어난 문제해결 능력과 수학적 사고력을 가진 이들의 다양한 사회진출에는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고 창의성을 제고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그들이 더욱 빛나는 곳은 따로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재능 펼치도록 다양한 기회 제공을

최근 기초과학자에 대한 지원이 체계적인 틀을 갖춰가고 정부와 담당 부처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월드컵 우승팀을 낼 정도의 최상위 레벨 프로그램은 매우 정교하게 구성돼야 하는데 일부 신진들의 이탈을 보면 그 정도 섬세함에 이르기까지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박사과정, 박사후연구원, 신임교수 과정을 거치며 좌절을 극복해내고 다재다능한 그들에 대한 유혹을 피티의 힘으로 이겨내며 최고의 학자로서 인류의 등불이 될 수 있는 적절한 기회가 주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중견연구자가 돼서 신진들을 형제처럼 이끌어주고 또 리더 연구자가 돼서는 필즈상 수상자 선정위원급으로 학계를 이끄는 모델이 자리 잡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정상급 학자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데는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온갖 좌절과 유혹, 유레카의 심리까지 포괄하는 다면적 접근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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