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는 떠서는 안 되는 배였다. 감사원이 8일 발표한 중간감사결과를 보면 해경과 해양수산부·항만청 어느 한 곳이라도 제 역할을 했다면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공무원들의 마음에 국민은 없고 딴 생각만 가득했던 것이다. 요즘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에 임하는 정치인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주 "VIP(대통령)가 영상을 좋아한다"는 야당 의원의 왜곡발언에 여당의 '보이콧' 엄포로 국정조사는 파행됐다.
우리 사회의 극단적 분열상을 보면서 지난달 중국 베이징 출장 때 만난 권영세 주중 한국 대사가 "독일 바이마르공화국(1919~1933년)을 보고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요즘 우리나라는 '별에서 온 그대' 같은 한류드라마와 K팝 열풍으로 문화적 융성기를 맞는 반면 정치권은 좌우 극단으로 치달아 온건한 목소리가 설 틈이 없다. 문화적 번영에도 불구하고 좌우 정치세력의 극단대립으로 멸망의 길을 걸었던 바이마르와 닮아 걱정이 크다"는 것이다.
극단주의로 치닫는 이유는 무엇일까.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폐쇄적인 의견을 나누면 더 극단적인 입장으로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의 저자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교수의 답이다. 우리 정치도 이에 해당한다. 여야가 소통 노력은 잊은 채 자기들끼리 뭉쳐 비슷비슷한 생각을 나누다 보니 잘못된 확신이 커지고 극단주의가 점점 기승을 부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방치되면 시간이 갈수록 극단주의 증상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온건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집단에서 밀려나고 남는 사람들은 서로를 '제일 친한 친구'로 여기면서 의리를 생명으로 알고 파국으로 치닫는 지경까지 가면 상황은 돌이키기 어려워진다. 여기에다 사이버공간에서의 좌우대립마저 극단의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 편식하는 이른바 '데일리 미' 커뮤니케이션 때문에 극한 말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넘쳐나고 있다. 대니얼 솔로브 조지워싱턴대 교수의 "집단이 하나의 이슈에 집중하면 의견이 대립하는 경향을 띠며 결국은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는 경고가 아니더라도 우리네 SNS 속 군중심리는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극단화는 재앙을 초래할 뿐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역사가 이를 말해준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혁명을 거쳐 1919년에 출범한 공화국은 가장 이상적인 민주주의와 복지주의의 겉모습을 지녔으나 극좌와 극우의 극단적인 싸움질 끝에 경제가 파탄 나고 말았다. 당시 독일 국민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장 인플레이션이 심했던 1923년에는 18개월 사이에 물가가 1조%나 폭등해 거리에는 지폐 다발을 장난감 삼아 갖고 노는 아이들로 넘쳐났을 정도라고 한다. 기진맥진해진 독일 국민은 결국 '강한 독일'을 주창한 악마(히틀러)의 유혹에 속절없이 무너졌고 재앙은 전 인류에 미쳤다.
우리는 극단주의 경향을 하루속히 떨쳐내야 한다. 선스타인은 "극단주의를 이기는 것은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로 무장한 민주적인 문화"라고 했다. 이대로 다양성과 민주적 문화가 실종된 채로 계속 가다가는 우리 사회가 또 어떤 위험에 처할지 알 수 없다. 소통하는 정치, 타협하는 정치의 복원이 시급하다. 가장 성공한 미국 대통령으로 꼽히는 링컨은 좌우 인사로 구성된 '라이벌들의 팀'을 만들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극단주의를 회피했다. 노무현 정부의 시민사회수석실과 이명박 정부의 사회통합위원회 역시 극단주의의 위험을 줄이려는 노력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여야 원내지도부와 첫 청와대 회동을 가진다. 매우 늦은 감은 있지만 이번 만남을 소통의 정치를 되살리는 출발점으로 삼아 우리 정치에서 극단주의 위험을 몰아냈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박 대통령은 '100% 대한민국' 공약을 달성하고 국민은 마침내 성공한 대통령을 가질 수 있게 된다.
/문성진 논설위원 hnsj@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