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한글 사라진 백화점

유통가 '유커' 모시기 혈안… 매장 안내문 중국·영어 일색

"매출 비중 커 어쩔수 없다"

"명동 가면 中 여행 온 기분"… 내국인 고객 오히려 외면

롯데백화점 본점 영플라자 엘리베이터 인근에 배치된 안내문. 한글 없이 영어와 중국어로만 표기되어 있다.

주부 김정희씨는 얼마 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에 들렀다가 다소 불쾌한 경험을 했다. 판촉사원이 김씨에게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말을 걸었기 때문. 김씨는 "아무리 백화점을 찾는 중국인이 많아졌고 중국인과 한국인의 생김새가 비슷하다고는 하나 내국인 손님과 모국어가 우선 아니냐"며 "백화점 곳곳에 붙어 있는 안내문도 우리말보다 중국어, 영어가 더 많은 것 같다"고 불만을 토했다.

유통업계에서 '큰 손'으로 부상한 중국인 관광객(유커)을 잡기 위해 백화점, 면세점은 물론 로드숍까지 앞다퉈 중국인 대상 판촉과 홍보에 전력을 쏟으면서 뒷전으로 밀려난 내국인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16일 유통·관광업계에 따르면 올해 한국을 찾은 유커 수는 지난 10월까지 524만5,693명으로 단일 국가로는 처음으로 연간 방문객 수가 500만명을 넘었다. 같은 기간 전체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가 1,199만7,549명인 점을 고려하면 한국을 찾은 관광객 2명 중 1명이 중국인인 셈이다. 또 지난 해 같은 기간 방한 중국인 관광객 수(377만명)과 비교하면 40% 가량 증가하며 방한 중국인은 국내 소비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붙들기 위해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중국인 대상 마케팅에 나서면서 내국인들은 점점 소외되는 분위기다. 올들어 전체 매출에서 중국인 비중이 16.7%까지 늘어난 롯데백화점 본점의 경우 명품관인 애비뉴엘에 중국인 전용 안내데스크는 설치했지만 내국인을 위한 안내데스크는 별도로 마련하지 않았다. 각 브랜드 매장은 물론 백화점 곳곳에 배치된 안내문도 중국어 일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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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현재 내국인 대상 세일 행사가 특별히 없는 시점이라 외국어와 한국어 안내문 비율이 9대1 정도로 외국어가 더 많이 배치된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연평균으로 보면 한국어가 전체의 60~7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해명했다.

도심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 등지에서도 중국어가 한국어를 밀어낸 지는 오래다. 면세점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인 내방객이 내국인보다 더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국인들은 "불편해서 가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겨울 휴가차 출국을 앞둔 박정은씨는 "해외에 나갈 기회가 별로 없어 예전에는 출국 전에 꼭 시내 면세점을 찾아 상품을 둘러 보곤 했지만 지난 해부터 발길을 끊었다"고 말했다.

명동 등 중국인들이 많이 찾는 상권내 로드숍의 내국인 홀대는 더 심각하다. 회사원 김혜정씨는 "저가 브랜드 화장품 숍에서 낱개에 2,000~3,000원인 마스크팩을 대량 묶음으로만 판매하고 있어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그냥 나왔다"며 "죄다 중국인을 겨냥한 마케팅이나 상품 구성으로 역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고 불만을 쏟아냈다. 실제로 김씨가 방문한 화장품 매장에서는 마스크팩을 50개, 100개 등 대량으로 묶어 10만~30만원대에 판매하고 있었다.

해당 브랜드 매장 직원은 "불만을 표하는 내국인 고객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워낙 중국인 매출 비중이 높다 보니 이들을 겨냥한 제품 구성을 늘릴 수 밖에 없다"며 "1인당 중국인 구매액이 내국인 구매액보다 10배 이상 크기 때문에 매출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명동 소재 패션 매장에서도 내국인의 역차별은 적지 않게 이뤄지고 있다. 브랜드별 행사 내용이 중국어가 대부분인데다 매장에 들어가도 매장 직원들이 내국인보다는 중국인에게만 밀착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늘었다. 주부 이성경씨는 "명동에 올 때마다 홍콩에 온 듯한 기분이 드는 데다 직원들이 중국인들 옆에만 붙어서 설명하고 있어 명동에 쇼핑하러 오는 게 점점 싫어진다"며 "내가 먼저 와도 대량 구매를 하는 중국인들에 밀려 서비스가 뒷전일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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