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한 템포씩 늦는 외환당국

지난 6일 명동 은행회관 15층의 분위기는 괜히 들뜬 분위기였다. 물론 좋은 일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연초부터 원ㆍ달러 환율이 급락세를 보이자 관계 당국자들이 놀란 나머지 모인 자리이기 때문이다. 권태신 재정경제부 차관 주재로 산업자원부ㆍ한국은행ㆍ금융감독위원회 등 관계기관 사람들이 모여 긴급 환율대책회의를 열고 주거용 해외 부동산 취득과 개인의 해외투자 제한을 연내 완전히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권태신 재경부 차관은 “해외 부동산 취득 규제 완화조치가 상당히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외환시장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환율 급락세는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외환 당국은 일주일 뒤인 13일 974원대로 떨어진 환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20억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개입을 단행한 데 이어 16일에도 부분적인 개입이 이어졌다. 때문에 원ㆍ달러 환율이 일시적으로 급등세를 보였다고는 하지만 시장 반응은 어쩐지 어정쩡했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정부가 아직 외환위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딜러는 “경제가 불황이라고 해도 수출은 독야청청 외로운(?) 고도성장을 계속해 국내에 밀려드는 달러화가 넘쳐나는 판국인데도 정부의 해외투자에 대한 규제는 수년간 제자리에 머물고 있었던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달러가 공급 과잉이 되고 있어 원ㆍ달러 환율이 떨어지는데도 달러를 밖으로 내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자본 유출 아니냐’며 불안에 떨고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지난해 10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를 올릴 당시 주요 배경 중에 하나로 한ㆍ미간 금리 역전에 따른 자본 유출을 꼽았을 정도로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 문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자본 유출을 우려해야 할 나라는 한국이 아닌 미국이 아닐까. 달러화가 기축통화라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중앙은행들의 달러 다변화 움직임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으며 아시아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유력한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달러화 자체가 천덕꾸러기가 될 수도 있는데 무조건 달러화에만 집착해 공연히 힘만 빼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사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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