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의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강세론자들의 기세가 점점 꺾이고 있다. 신정부 출범 및 1월 효과, 그리고 기관투자자의 신규 자금 집행 등에 힘입어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었지만 1월 마지막 주인 지금 이런 기대는 신기루처럼 허망하게 사라지는 듯하다.
시중 부동자금이 무려 370조에 이른다는 보도를 듣노라면 이 많은 돈들이 주식시장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점점 더 궁금해지게 된다. 이 돈의 단 10%만 주식시장에 유입되더라도 수급은 크게 개선될 것이 분명하며 주식시장의 참가자들이 갈망하는 지수 1,000포인트의 벽을 쉽게 뚫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과연 언제쯤 이 많은 시중 자금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중 자금사정이 정말 풍부한 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앞서 잠깐 인용한 것처럼 단기 부동자금이 370조원에 이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자금들이 지난 98년 및 2001년과 같은 유동성장세를 재현시킬 자질을 가지고 있는 자금인 지는 의문이다.
현재 시중자금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항상 여유자금이 남아 운용할 곳을 찾던 가계는 부동산 투자를 위해 빚을 짊어지고 있는 반면 자금부족을 늘 호소하던 기업들은 역대 최대 규모의 흑자를 계기로 여유 자금을 굴리기 위해 여념이 없는 양상이다.
지난 90년대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데에서 시중 자금의 단기 부동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즉 기업들이 보유한 자금은 그 성격상 설비투자와 재무구조 개선, 사원복지 개선 등 사용처가 정해져 있는 자금이라는 점에서 MMF를 비롯한 단기 상품에 잠시 머무르는 것이다. 결국 부동자금의 절대적인 규모에 흥분할 것이 아니라 실물경제에서 필요로 하는 자금의 수준에 비해 통화의 공급이 적정한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시중 자금의 풍족함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지표로는 `잉여 유동성`을 들 수 있다. 총통화 증가율과 산업생산 증가율을 비교해 통화공급보다 산업생산 증가율이 높게 나오면 `통화긴축`상황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하는 지표의 하나다.
그런데 최근까지의 추세를 살펴보면 지난 상반기 이후 잉여 유동성의 수준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잉여유동성이 줄어드는 것은 한국은행이 부동산시장의 버블 형성 가능성을 우려해 지속적으로 통화공급의 조절에 나섰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지난 11월 본원통화 증가율은 9.3%(말잔 기준)에 불과해 지난 90년 이후 평균 증가율 11.1%는 물론 IMF 경제위기를 겪은 98년 이후의 평균 증가율 10.1%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최근 열린 경제부처 간담회에서 금리인하의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통화정책의 기조가 바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종합주가지수와 잉여유동성의 관계에서도 잘 나타나는 것처럼 주식시장은 잉여유동성의 추세에 후행하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과거의 경험이 항상 반복된다는 전제 아래 가능한 이야기지만 상반기부터 통화공급이 증가된다고 가정해도 주식시장은 하반기 이후에나 유동성 장세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2003년 상반기에는 주식매매의 좋은 기회가 없는 것일까. 최근 주식시장의 침체는 투자자들이 자신감을 잃은 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분위기를 돌려 놓을 수 있는 재료가 나오는 순간 언제든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선 대 이라크 전쟁의 개전과 통화정책의 방향전환 등이 이런 재료의 후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런 재료들이 이미 하락 추세로 접어든 시장의 추세를 완전히 되돌려 놓을 수는 없겠지만 악재에 지친 투자자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줄 수 있는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홍춘욱 한화투신운용 투자전략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