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금융상품에 대한 필요성과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국내 은행들에겐 이 시장이 불모지나 다름없다. 파생상품의 종류와 양은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운용능력, 기법등에 있어서는 선진 은행에 비해 바닥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은행권의 파생금융은 증권 분야에 비해 거래 수준이 미미한데다, 그나마도 외국계 은행의 독식 속에 국내 은행들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파생금융 관리능력을 높이는 것이 시장 선진화의 지름길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현실은 국내 은행들의 파생상품 부문 인력과 조직 현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산업은행을 비롯, 일부 은행에서 최근 1~2년간 인력 및 조직을 보강했지만, 대다수 은행들에선 파생금융 트레이딩 및 개발 인원이 10여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은행권이 최근 외환 부문에서나마 파생상품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4년 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외환시장에서 은행간 외화 현물 거래액은 하루 평균 38억9,700만 달러로 2003년보다 49.4% 증가했다. 또 통화 스왑과 옵션 등 파생상품의 하루 평균 거래 액도 2억8,200만 달러로 지난해(1억4,400만 달러)와 비교해도 95.8%나 증가했다. 이처럼 외환 거래 규모가 급증한 것은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국내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선 데다, 지난해 1월2일부터 외환시장 거래시간이 늘고 수출입과 자본거래 등 대외거래가 급증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지난해 국내 외국환 은행과 국내 비거주 외국인과의 차액결제선물환(NDF) 거래 규모는 하루 평균 17억 달러로, 2003년보다 26.9% 늘어나면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문제는 내용이다. 국내 외환시장의 거래 규모가 급증하고 있음에도 불구, 아직까지 원화 및 엔화 환율 변동폭은 주요 국가 통화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외형적으로 성장했지만 내부 체질이 허약한 탓에 여전히 변동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윤만호 산업은행 금융공학실장은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헤지를 위해 파생상품 거래 역시 과거 보다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기업들의 장외 파생 거래에 대한 인식 부족과 금융권, 특히 은행들의 신용파생상품 거래 회피현상으로 파생상품 시장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병구 금융감독원 선임검사역은 “최근 은행들이 환율이나 금리의 변동으로 인한 위험 회피를 목적으로 파생상품 거래를 늘리고 있다”며 “최근에는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파생상품 거래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미국 등 선진국 은행들에 비해 그 규모가 아직 미미한 수준파생상품 거래를 활성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이 파생상품의 비중을 뒤늦게나마 늘리고 있는 것은 눈 앞의 현실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급변하고 있는 금융시장 환경에 대응하는 동시에 영업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시중은행 정기예금금리는 3~4%대에 머물고 있어 기존의 금융투자방식으로는 앉아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 같은 마이너스 자산운용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권에서는 주가지수연계 예금(ELD), 펀드(ELF), 증권(ELS)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이들 파생금융상품은 원금을 보전하면서도 파생상품을 연계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파생상품은 양날의 칼이다. 금융거래의 유연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고 수익원을 다변화 하는 순기능이 있는가 하면, 금융회사의 도산 원인이 되거나 미국 엔론사의 경우처럼 재무구조를 분식하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양복승 산업은행 금융공학실 팀장은 “파생상품은 복어요리와 같아 잘못 요리하면 독으로 큰 피해를 입지만, 잘 관리하면 천하일미의 요리를 만들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지난 97년 세계경제 위기에 버금갈만한 수준으로 증폭되는 시기에 ‘파생금융상품’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이라는 지적이다. 때문에 선진국들은 금융기관의 리스크 관리를 위해 파생금융 상품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수익을 다변화하는 이중 효과를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