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누가 그를 죽였는가(사설)

한보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전 제일은행상무 박석태씨의 죽음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그는 마지막 가는 길에서조차 자살의 속내를 밝히지 않았다. 단지 가족들에게는 「미안하다」, 관계자들에게는 「죄송하다」는 한마디씩의 표현으로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여운으로 남겼을 뿐이다.그러면 도대체 누가 그를 죽였는가.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이 사회에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그는 검찰조사에서 중요도가 낮은 참고인이었다. 또 검찰 수사과정에서의 조사태도도 비교적 협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처벌대상에서도 제외돼 있었다. 박 전 상무는 지난 17일의 국회청문회에서 1조7백억원에 달하는 대출과정과 유원건설 인수 당시의 청와대 개입설을 처음으로 털어 놓았고 은행장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금융계의 풍토를 지적하기도 했었다. 추측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는 이같은 진술을 한뒤 고민해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31년을 청빈한 은행원으로 살아온 그로서는 한보사태로 온 나라가 소용돌이 치는 상황인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세태가 더 개탄스러웠을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몸통」은 어디가고 「깃털」들만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현실이 괴로웠을 것이다. 그는 타고난 성실성으로 아무런 「연줄」도 없이 임원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유서에서 자녀들에게 「아빠는 약했지만 너희는 굳세게 살아다오」라고 당부했다. 인간답게 살기를 고집하는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던진 충고였다. 그는 이 한마디로 굴절된 사회정의, 부도덕한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지난 70년대 일본에서는 록히드와 더글러스 그러먼기 사건 당시, 다나카(전중) 당시 총리의 운전사와 종합상사인 닛쇼이와이(일상암정)사의 시마다(도전) 상무가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두사람 모두 검찰 소환을 앞둔시점으로 총리의 운전사는 자동차안에서 있었던 대화내용을, 시마다 상무는 뇌물거래내용을 알고 있었다. 시마다 상무는 회사 옥상에서 몸을 던지면서 「개인은 유한하되 회사는 무한하다」는 유서를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박 전 상무의 경우는 다르다. 한보비리와 의혹을 풀지 못하고 있는 새태가 그를 죽였다. 어쩌면 이 사회가 평생을 한 직장을 위해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온 한 인간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죽음앞에 속죄해야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죽음은 미화돼서는 안된다. 그래서 그의 죽음때문에라도 한보비리의 진실은 철저히 가려져야 한다. 진실을 밝히는 것만이 사회정의의 실현이요 죽은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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