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년동안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을 견인해 온 수출공업화 과정에서 공업단지는 실질적인 주역을 담당해 왔다. 60년대 울산공업단지를 효시로 구로 수출공업단지가 세워졌다. 70년대는 중화학거점으로 육성된 창원·구미·여천단지가 태어났고 80년대는 인천남동공단이, 90년대엔 대불·군장·석문단지 등이 건설되어 국가생산력 배양과 수출증진에 크게 기여해 왔다.우리나라 공업단지는 485개(일본 1,900개, 미국 8,500개)로 전체 제조업 공장부지의 50%, 생산의 44%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단지 조성의 성과를 보면 국가경제측면에서 철강·석유화학·전자 등 전략산업을 단기간에 집중 육성할 수 있는 집적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기업경영측면에서는 금융 또는 관련산업의 집적으로 저렴한 생산기반을 활용해 생산비용절감의 이점을 누린 것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 공업단지는 수급불균형, 높은 분양가, 산업환경과 입지패턴 변화에의 대처 미흡 등으로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98년말 현재 전국 194개 국가 및 지방공단의 미분양면적은 3,700만평(26.5%)에 이르고 있다. 이 규모는 향후 7∼10년간 우리나라 공장용지 수요에 해당하며 용지가액(평당 25만원 기준)으로 9조3,000억원에 이른다.
이때문에 토공·수공 등 정부투자기관과 해당 지방자치단체는 막대한 원리금상환 부담으로 재정적 어려움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공업단지 수급불균형 문제는 공급일변도인 정부의 입지정책, 시·도 및 지방자치단체간 과당경쟁, 정치권의 선심공약 등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우리나라 공업단지는 가격과 품질면에서 국제경쟁력이 크게 떨어져 외국기업은 물론 국내기업들조차 입주를 꺼려하는 지경이다. 군장공단의 분양가(26만 5,000원 국내평균)를 100으로 볼 때 싱가포르의 베덕이 3, 미국의 오스틴이 6, 영국의 윈야드가 2, 프랑스의 테칠드가 73으로 나타났다.
1996년부터 산업환경 변화에 부응해 공장위주의 전통적 공업단지 개념에서 미국·일본 등 선진국과 같이 지원서비스산업, 연구개발, 주거·레저 등 복합산업 집적지로의 전환이 시도되긴 했지만 실천노력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발년대에는 그나마 공업단지 관리청이 주도해 공업단지 건설·관리·지원 등에 총력을 기울였다. 또 입주기업 지원을 위한 각종 인센티브와 행정 편의제공에 만전을 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의 산업단지 개발과 관리, 입주기업지원 등은 오히려 퇴색된 감이 든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입지제도는 미국의 실리콘밸리, 일본의 테크노폴리스, 영국·프랑스·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의 원스톱 산업입지정책 등에 견주면 빈약하기 그지 없다.
그렇다면 산업입지의 수급불균형 해소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방안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첫째, 산업입지정책 근간을 공급 위주에서 기업수요 위주로 전환시켜야 한다. 개발방식도 관위주에서 민간부문과 실수요기업의 참여를 적극 유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산업용지의 시장기능 활성화정책이 긴요하다고 본다. 일본의 경우 입지수요 부서인 통산성이 산업입지정책을 주관해 산업용지의 수급조화, 테크노파크, 두뇌입지 등 산업입지환경의 변화와 기업수요패턴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산업단지의 가격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산업단지 조성원가의 평균 19%에 이르는 기반시설 건설비와 평균 17%에 이르는 금융비용을 낮추기 위해 대규모 재정자금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 WTO체제하에서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보조가 금지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같은 산업단지개발 지원정책이 금후 산업정책의 주효한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일본·영국·타이완 등 선진국이나 경쟁국에서 자국의 단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산업단지 개발기금 등을 운영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끝으로 산업단지의 경쟁력은 입지·가격 외에도 정보네트워크, 환경처리 시스템, 클러스터를 통한 기업연계 등을 고려한 단지설계와 면밀한 업종배치 등이 관건이 될 것이다. 특히 입주-건설-공장가동-사후관리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있어 타이완의 신쥬단지와 같은 고품격의 「토털 지원시스템」구축이 긴요하다고 본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입지정보센터소장(상무) 경제학박사 노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