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공부감옥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는 18~19세기에 결투를 하거나 술에 취해 경관을 때리는 등 소동을 일으킨 학생을 가두던 '학생감옥'이 있다. 학교 측은 치외법권 지역인 대학에서 경범죄를 저지른 학생을 2일~4주가량 가뒀다. 처음 며칠은 빵과 물만 주고 바깥 출입도 금했지만 이후에는 강의를 들으러 나다닐 수 있었다. 당시 학생들은 좁은 공간에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감금 생활의 낭만을 즐겼다. 벽과 천장에는 이들의 그림과 시·낙서 등이 빼곡하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원효나 의상대사가 수행하거나 지었다는 사찰·암자 등이 꽤 많다. 특히 원효는 일생의 상당 부분을 비좁은 동굴·토굴이나 초막에서 수행했다. 산속 바위 밑이나 인적이 쉽게 닿지 않는 이런 곳이야말로 세상사의 번잡함과 사찰의 안락함을 뒤로 한 채 참선하며 정진하기엔 제격이다. 과거 사법·행정고시 등을 준비하는 이들이 조용한 사찰이나 암자를 즐겨 찾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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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일부 강남 엄마들 사이에 장롱·캐비닛 모양의 '1인 독서실 가구'가 인기라고 한다. 가로 1.1m, 세로 0.8m, 높이 2.1m 크기의 원목 가구로 책상·램프·책꽂이 등이 부착돼 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게임·TV 등의 유혹에서 벗어나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 제품이다. 200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구매 대기자가 밀려 있다고 한다.

△아이 공부방을 챙겨줄 형편이 안 되는 가정에서 자녀에게 독립된 공부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기발한 아이디어 상품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유리창이 달린 여닫이문만 닫으면 '1인 독서실'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 나이 어린 자녀를 '공부감옥'에 가두려는 것이라면 명백한 아동학대이자 인권침해다. 유리창을 통해 아이가 딴전을 피우는지 감시하는 것도 부족해 잠금장치·감시카메라·종 등을 다는 부모도 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만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획일성과 학부모들의 비뚤어진 경쟁의식으로 공부감옥까지 등장했지만 정작 미래를 짊어질 꿈나무들은 공부에 흥미를 잃어간다. /임웅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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