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반복되는 이동전화 요금인하 논쟁에서 이번에는 이전과 다른 해법이 등장하는 것 같다. 정보통신부가 재판매제도를 통해 경쟁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재판매제도란 주파수나 네트워크를 보유한 사업자의 수가 한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존 사업자가 의무적 또는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도매상품을 구입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재판매가 활성화되면 사업자 수의 증가로 경쟁이 촉진돼 소매요금은 낮아지고 다양한 상품의 등장으로 소비자 선택의 폭은 증가한다.
재판매는 융합화 추세에도 잘 어울린다. 유선과 무선, 음성과 데이터, 통신과 방송이 결합되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융합상품이 개발되고 소비자에게 제시되려면 한 사업자가 다양한 서비스를 묶을 수 있어야 한다. 재판매로 인해 각자의 영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사업자들이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하는 여건이 조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재판매를 도입하기만 하면 이러한 여러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인가. 소비자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소매요금은 인하되고 소비자의 가계통신비 지출이 줄어들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재판매가 어떻게 도입되고 운영되느냐가 중요하다. 재판매가 도입되면 도매부분과 소매부분을 서로 다른 사업자가 맡게 된다. 이 경우 이중마진으로 한 사업자가 맡는 경우보다 소매요금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재판매의 특성과 현재의 규제관행을 볼 때 재판매 도입이 제대로 이뤄지고 그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날지도 의문이다.
우선, 재판매는 속성상 잘되지 않는다. 망보유사업자가 재판매를 원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망보유사업자가 소매부문의 경쟁자인 재판매사업자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것은 쉽게 이해가 간다. 따라서 재판매제도를 도입하면서 당사자들의 자율적 협상에만 맡긴다면 재판매가 잘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재판매 사업자들이 시장에 진입해 활발하게 경쟁하는 상황을 만들고자 한다면 시장지배적 망보유사업자에게 재판매를 의무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재판매가 활성화되면 망보유 사업자간의 경쟁도 활발해진다. 그러한 의미에서 재판매는 경쟁활성화 방안이다. 물론 경쟁이 활성화되면 재판매 의무화를 해소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음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재판매사업자 보호 자체가 정책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재판매는 도매가격과 소매가격의 차이가 클 때 등장하고 재판매가 활성화되면 그 차이는 줄어든다. 경쟁이 활발해 소매영역에서 초과이윤이 소멸되면 재판매사업자는 퇴출되기 마련이다. 이후 시장의 경쟁은 다시 미흡해질 것이며 이로 인해 초과이윤이 발생하고 재판매사업자의 재진입이 이뤄질 것이다. 이처럼 재판매사업자가 자유롭게 시장에 진입ㆍ퇴출하면서 기존 사업자에게 경쟁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정책목표가 돼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사업자간 형평성과 후발사업자 보호를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강자와 약자의 논리, 사업자간 양극화에 집착하면 경쟁은 효과적일 수 없고 요금은 낮아지기 어렵다. 도매요금을 결정하는 방식도 규제담당자의 자의성과 정치적 압력을 배제하고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재판매가 바람직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규제관행의 변혁이 필요하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제도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그것을 엄격하게 실행하고 감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현재의 규제제도는 매우 불투명하고 정치적인 고려가 많이 작용한다. 모호하고 자의적인 규제풍토에서 재판매 도입이 경쟁활성화의 생색내기로 그칠까 심히 우려된다.
정부는 재판매 도입이라는 정책적 선언만으로 경쟁활성화가 자동적으로 달성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사업자들이 자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시장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를 위해 보다 투명하고 합리적인 규제제도와 운영방식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