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간산업인 철도를 민간에 넘기려던 정부의 계획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철도시설에 대한 국가의 소유권은 앞으로도 유지되며 철도청은 일단 공사로 전환된 뒤 민영화 여부가 결정된다. 이 경우 발전이나 가스산업 등 이른바 네트워크(망)산업의 민영화작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8일 이런 내용을 담은 철도구조개혁 조정방안을 정부와 합의해 발표했다.
김대환 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는 “건설교통부와 논의해본 결과 고객유치ㆍ여객수송ㆍ차량관리 등 철도청의 운영 부문을 공사로 일단 전환한 뒤 민영화 여부를 검토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철도 운영 부문이 공사로 전환될 경우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 또는 공기업의 경영구조 개선 및 민영화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게 된다고 김 간사는 덧붙였다.
그는 이어 “선로 등 철도시설은 당초 정부안대로 사회간접자본(SOC) 차원에서 국가가 계속해서 소유하고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인수위는 이와 관련, 철도시설은 철도시설공단이 맡도록 하고 시설유지보수 업무는 시설주체와 운영주체간의 책임을 법령이나 계약을 통해 명백히 하도록 할 계획이다. 김 간사는 철도산업의 민영화 연기에 대해 “민영화를 하더라도 실질적인 경쟁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우선 공사로 전환한 뒤 경쟁을 도입할 여건이 조성되면 차후에 민영화를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고 못박았다.
◇철도 민영화 재검토 배경=이번 결정에 핵심적 역할을 한 인사는 임원혁(36)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임 연구위원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싱크탱크 가운데 공기업 민영화와 재벌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핵심 멤버.
임 연구위원은 “네트워크산업의 경우 철저한 검증과 파급효과를 계산해서 결정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정부는 민영화라는 목표에만 집착한 나머지 패착을 뒀다”고 평소 강조해왔는데 그의 생각은 이날 인수위의 공식 입장으로 대변됐다.
인수위의 이번 결정은 앞으로 철도산업 중 운영 부문은 민영화에 앞서 공기업(공사) 형태로 전환되고 남동발전소를 제외한 한국전력 4개 발전자회사의 매각은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의 일괄매각 방식이 아닌 분산매각 방식으로 추진될 것을 예측케 하고 있다.
인수위가 철도 민영화를 사실상 포기한 표면적 이유는 매년 1조원 이상의 영업적자가 나는 철도산업을 민간에 넘겨줄 경우 부(負)의 효과가 더 클 것이란 분석 때문이다.
민영화를 하더라도 만성적자인 경영상태를 어느 정도 정상화시킨 후 단행해야 제 값도 받고 매각효과도 극대화할 것이란 지적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노동계의 반발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력ㆍ가스 민영화도 재검토=철도산업의 민영화 일정이 다시 잡힌 것을 감안하면 전력이나 가스산업에 대한 민영화 스케줄도 대폭 변경될 게 확실하다.
특히 간판 공기업이라는 이유로 혼전에 혼전을 거듭해온 한전의 민영화는 대수술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인수위가 밝힌 예정대로라면 내년 4월 발전 부문으로부터 분리될 예정인 배전 및 판매 부문은 일정 기간 동안 국영으로 유지되고 민영화 여부에 대한 결정은 나중에 다뤄지게 된다. 남동발전을 제외한 4개의 발전자회사들도 일괄매각 방식이 아닌 분산매각 방식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김 간사는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계획도 재수정될 가능성이 높다. “전력산업의 경우 전력공급계약의 70~80%가 장기 공급계약으로 이뤄지고 실시간 변동요금제가 전제돼야 민영화가 가능하다”는 임 연구위원의 말은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가스산업 민영화에 대해서도 “가스공사가 이미 맺어놓은 장기 가스공급계약분까지 민영화계획에 포함시키는 바람에 엄청난 비용이 발생할 것이 뻔해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동석기자 everest@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