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기관이 벤처투자 질서 흐린다
창투업계 "주식상환조항 빼는 등 수익보다는 감사에 신경" 비판
국책銀 "단기 투자하는 창투사 경쟁력 없어"반박
이상훈 기자 shlee@sed.co.kr
공공기관이 대규모 자금을 벤처기업에 투자하면서 이 같은 자금력을 이용해 시장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창투 업계의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이 올해 전년보다 5배 가량 늘어난 2,500억원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비롯해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벤처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올해 투자규모는 지난 해 창투업계의 전체 투자규모(5,600억원)의 44%에 달한다.
이처럼 대규모 투자과정에서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투자계약서를 작성하는 등 부작용이 일고 있다. 기업금융을 주로 하는 모 국책은행의 경우 벤처기업과 투자계약서를 작성할 때 주식상환(Buy-back) 조항을 빼 경쟁 창투사들을 손쉽게 따돌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형 창투사 사장은 "일반적으로 투자한 기업 대표가 계약서 작성 당시와 다른 식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등 도덕적 해이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주식상환 조항을 넣는 게 업계의 상식"이라며 "이 은행의 경우 수익성 측면보다는 '감사'에 더 신경을 쓴 나머지 관련 조항을 삭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창투사 관계자도 "주식상환 조항은 실제 집행하기가 까다로운 작업이라 일부에서 벤처기업과의 계약서 작성 때 빼놓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벤처기업으로서는 좋은 조건에 투자를 받는 것이라 이런 자금을 선호하겠지만 시장질서는 엉망이 된다"고 비판했다.
한 마디로 공공자금이 민간자금을 시장에서 몰아낼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인 셈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모 국책 은행 관계자는 "우리측도 투자 기업 대표가 기업공개(IPO) 등을 별다른 사유 없이 미루는 등 계약을 위반할 경우 주식을 상환토록하고 있다"며 "창투사들이 단기운영 자금 성격이 강한 상환전환우선주에 주로 투자하다 보니, 시장 경쟁력에서 은행계 자금보다 뒤쳐지는 경향이 있다"고 반박했다.
상환전환우선주의 경우 투자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상환이 가능해 투자기업으로서는 꺼리는 측면이 강한 데다, 최근 창투사의 상환전환우선주 투자 비중이 70%를 넘는 수준이라는 것.
그는 "사실 상환전환우선주는 투자차원에서 그다지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창투업계로서는 보통주에도 상당분 투자하는 은행계 투자패턴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어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입력시간 : 2005/07/24 1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