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동십자각] 기수를 존중하는 사회

崔性範정경부차장지난 6일 단행된 검사장급 인사에서 박순용 검찰총장의 사시 8회 동기 7명이 모두 퇴진했다. 동기나 후배가 윗자리에 오르게 되면 모두 옷을 벗는다는 기존의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 적잖은 공을 들였다고 전해진다. 공무원사회의 경우에도 동기중에서 차관이 배출되면 나머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산하기관으로 자리를 옮겨 자리를 비켜주는 게 인사관행으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관료사회에서만 기수와 동기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이상 싫든 좋든 기수를 지니고 살아가야만 한다. 초·중·고·대학, 군대, 그리고 입사나 입행 고시기수를 부여받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자유직이라고 할 수 있는 탤런트사회에서도 군대보다도 엄격하다는 기수가 존재하는 걸 보면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기수 사회이고 군대문화다. 스튜디어스 사회도 군기가 확실(?)한 걸 보면 군대를 다녀온 남자사회에서만의 일은 아닌 듯하다. 유치원이나 체능교실에도 제○기 라는 기수가 있다. 이점에서 한국사회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완벽한 기수사회인 셈이다. 그러나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기수를 과연 고수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기수 위주로 움직이는 조직은 생산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노력을 해도 기수를 넘을 수 없고, 성과가 신통치 않아도 동기들과 함께 승진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무도 튀면서 일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수위주의 피라미드 조직에선 능력에 상관없이 기수가 높은 사람이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합리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필요가 없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조직이론에선 피라미드 조직을 가장 전근대적인 조직으로 평가한다. 기업들이 프로젝트조직, 사업부제, 그리고 매트릭스(MATRIX)조직으로 발전해 가는 것도 피라미드 조직을 고수해선 합리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점을 경험을 통해 절감했기 때문이다. 결국 기수가 철저히 지켜지는 조직일수록 생산성이 떨어지는 조직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미 민간기업에선 입사동기의 개념이 무너진 지 오래된 상황에서 검찰이나 관료조직이 기수를 철저하게 고수하는 것은 스스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조직임을 공공연하게 과시하는 셈이다. 주가가 오르고 금리가 하향안정세를 보이며 산업활동이 되살아나는 경제분야에서만 그쳐선 진정한 IMF탈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수와 서열에서 벗어나 합리성과 생산성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변화의 움직임이 우리사회 곳곳에서 꿈틀거려야만 한다. ○기 이상은 동반퇴진하기로 했다느니 ○기의 시대가 도래했다느니 하는 얘기가 더이상 화제가 되지 않을 때가 우리사회가 진정으로 IMF에서 탈출하는 날이다. SBCHO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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