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수필] 은행, 은행장

金容元(도서출판 삶과꿈 대표)한창 은행이 시끄러웠을 때 은행장을 지낸 어떤 퇴직금융인이 저녁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정치적으로 복잡한 때에 은행장의 일을 한다는 것은 높은 담장위를 걷는 것과 같다. 아차해서 담장밖으로 떨어지면 도중하차이고, 발을 헛딛어 담장 안쪽으로 낙하(落下)하면 곧장 형무소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몸의 균형을 잡으며 조심조심하지만 자기생각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담장안쪽으로 떨어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무사하게 임기를 끝낸 은행장들은 하나같이 안도의 한 숨을 내쉴 것 같았다. 『그건 그렇다 하고, 한국에 나와 있는 외국은행들은 금년에 억수같이 돈을 벌었다는데, 우리나라 은행들은 모두 거덜났다고 야단들이니 그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자, 그 전직 은행장은 그점에 있어서는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는 한 마디를 하고 고개를 떨구는 것이었다. 은행퇴출·합병·대규모의 명퇴(名退)·감원등 소란한 한 해였다. 그러는 가운데 국내 은행들은 금년 상반기에만도 6조7,000억원의 적자(赤字)를 기록했고, 부실채권규모가 국제기준으로 16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발표됐다. 반면에 한국에 나와 있는 38개 외국은행 지점들은 같은 기간에 5,000억원 이상의 흑자(黑字)를 공표하고 있다. 엄청난 차이이다. 돈장사보다 더 좋은 장사가 없다고 하고, 기업인들과 가난한 서민들은 높은 은행이자를 꼬박꼬박 내느라 뼈빠지게 고생들만 했다고 불평이 많은데, 우리나라 은행들은 밑빠진 독에 물붙기 식으로 천문학적 숫자의 적자에 부실채권뿐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 이유야 간단하지 않느냐, 우리 은행들은 빌려준 돈을 뭉텅뭉텅 떼였고, 외국은행들은 알뜰하게 챙긴 것이지. 다시 말하면 우리 은행들은 돈 떼먹을 사람들에게 돈을 안겨 주었고, 외국은행들은 사업 잘 하고 돈 잘 갚는 사람들을 골라서 거래한 것이지, 또 우리 은행들은 돈 빌려간 업체가 어떻게 되건 내버려 두었고, 외국은행들은 세심하게 살펴보며 관리했던 것이 아니었겠느냐.』 자리를 같이 했던 어떤 대기업 사장이 명쾌한 답을 냈다. 요즘 퇴직한 은행간부들을 만나게 되면『은행 후배들에게 미안한 생각뿐』이라고 하면서도 『은행이 바로 서야 재벌개혁이 성공하고, 모든 것이 풀린다』는 말을 하고 있다. 요근래 우리나라 은행들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없지만, 문제는 거덜난 이 은행들을 통해서 재벌개혁과 기업구조조정을 해 가겠다고 정부가 발표하고, 재벌기업들은 저마다 금융업을 핵심 주력사업으로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으니 아이러니컬 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