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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한 신문사의 수습기자 공채 필기시험에 ‘비보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나왔었다. 신문사 입사 시험을 오랫동안 준비해 나름대로 ‘한 상식’ 한다는 20대 응시자들. 온갖 어려운 문제는 다 맞추면서도 유독 이 문제에 대해 10명 중 9명이 틀린 답을 적었다. 당시만해도 비보이(B-Boyㆍ브레이크 댄스 또는 댄서)라는 문화는 낯설게 인식됐고, 그런 게 있는 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이미 한국 비보이들은 권위있는 각종 국제 대회에서 훌륭한 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비보이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은 그저 ‘거리 아이들의 춤’ 정도에 불과했다. 기성세대들은 지하철역 바닥에 머리를 박고 빙글빙글 돌아대는 아이들을 보며 눈을 흘겼고 자기 자식이 비보잉을 하면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불량해지는 것은 아닌가’하고 불안해 했다. 그러던 비보이가 이제는 한국의 새로운 문화를 주도할 핵심 콘텐츠로 대접 받고 있다. 특히 한국 비보이가 세계에서 1등이라는 얘기가 널리 알려지면서 한국에서 가장 큰 은행의 TV 광고에도 비보이가 등장하는 세상이 됐다. 대기업들은 홍보 마케팅 수단으로 비보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지자체와 기업 행사에도 비보이는 섭외 1순위를 차지한다. 프로 농구나 배구 같은 스포츠 경기의 하프타임 이벤트에서도 비보이 공연은 빼놓아서는 안 되는 프로그램이 됐다. 문화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비보이를 차세대 한류를 이끌 문화 콘텐츠로 선정해 다각도로 지원을 하고 있다. 현재 유명한 비보이 팀들은 대략 3개월치의 스케줄이 각종 국내ㆍ외 일정으로 차있는 상태다. 공연계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하다. 비보이를 활용한 공연 작품이 이미 10여 개나 제작됐고 몇몇 공연기획사들은 비보이를 난타와 점프를 잇는 국제적인 넌버벌 퍼포먼스로 키우기 위해 자금과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점프 제작사 ‘예감’이 준비하고 있는 ‘피크닉’이라는 작품은 공연의 메카인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4월 19~22일ㆍ피코크극장)을 하기로 예정하고 이미 런던 시내에 포스터를 걸었다. 이러다보니 과거 ‘거리의 춤꾼’으로 인식되던 비보이들에게도 다양한 기회가 열리고 있다. 세계 대회 우승권에 있는 유명한 팀들은 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대회 준비를 할 수 있게 됐고, 공연계에 뛰어들어 자신의 미래를 시험하기도 한다. 비보이 공연이 대거 늘어나면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비보이들에게도 무대가 주어지고 있는 것도 다행이다. 음반을 발표하고 가수로도 데뷔한 비보이 팀도 나왔다. 이제 부모들도 자기 자식이 비보이를 한다고 하면 말리는 사람보다는 연습실을 알아봐주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리빙앤조이팀은 대회와 공연 준비로 바쁜 비보이들을 만나 비보이가 급성장한 과정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들어봤다. ●2002년 이후 세계대회 4연속 제패
70년대 美서 시작한 힙합 문화의 하나…국내동호인 10만여명 세계정상급 10팀 내외 '리버스크루' 멤버 13명이 토요일 저녁임에도 불구, 땀을 뻘뻘 흘리며 동작을 가다듬고 있다. 이 들이 이렇게 애를 쓰는 이유는 오는 10일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서 열리는 세계 대회 '비보이 유닛'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기 때문. 목표는 물론 우승이다. 2001년부터 시작된 '비보이유닛' 대회는 올해부터 독일의 '배틀 오브 더 이어'와 영국의 'UK챔피언십' 등과 같이 명실상부한 주요 비보이 세계 대회로 자리매김 했다. 본선에 나오는 8개 팀 모두가 자국 내 예선을 거쳐 올라온 강자들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이번 대회 예선에 참가한 팀은 모두 160개에 달한다. 이처럼 외국의 비보이들이 한국이 주최하는 대회 참가를 희망하는 이유는 한국 비보이들의 국제적인 위상 때문이다. 어떤 세계 대회든 한국 팀들이 늘 우승후보로 거론되고, 한국 비보이들의 동영상은 외국 비보이들의 '기술 교본'으로 활용된 지 오래다. 이번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는 '리버스크루'는 이미 국내ㆍ외에서 충분한 명성을 쌓은 팀이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에도 힘든 상황에서 굳이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하려는 이유는 뭘까. 세계 일등 하기 위해 춤을 추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잘하는 이유? 연습이죠" '리버스크루'의 팀장인 비보이 서덕우(28)는 10년 넘게 춤을 춘 고참 비보이. 그는 "비보이들은 원래 대회 욕심이 많다"고 했다. "꾸준히 대회에 나가서 실력을 보여주고 입상을 하려는 욕심이 한국 비보이들의 수준을 끌어 올렸다"는 것이다. 비보이는 힙합 문화의 한 갈래다. 그저 형식적인 분류에 불과하지만, 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힙합 문화는 '4대 요소'로 구성되는데 'MC'(래핑) 'DJ' '그래피티'와 함께 4대 요소를 구성하는 게 바로 비보이다. 비보이 역시 힙합의 다른 요소들과 찬가지로 미국에서 시작돼 전세계로 퍼졌다. 한국인에게는 어디까지나 최근에 소개된 외래 문화다. 그런데 어쩌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비보이를 이처럼 잘하게 됐을까.
최근엔 국악·발레 접목등 저변확대 시도 잇따라…극적 요소 보완이 작품성패 가를듯 비보이를 소재로 삼은 공연은 최근 공연계가 가장 야심차게 준비하는 아이템 중 하나다. 비보이 라는 소재는 기본적으로 넌버벌(대사없는) 퍼포먼스로 짜기 알맞아 세계화하기에도 유리하다. 때문에 기획자들은 비보이를 소재로 '난타'와 '점프'의 대를 잇는 국제적 퍼포먼스를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다. 비보이가 춤 대회에서 벗어나 흥행사업인 공연에 접목될 수 있는 가능성은 '마리오네트'와 '프리즈'가 열었다. '마리오네트'는 지난해 독일서 열린 배틀오브더이어 대회에서 한국 팀 '익스프레션'이 선보인 특별 퍼포먼스로, 기립박수를 받았던 작품이다. 이 퍼포먼스가 미국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 세계적인 호응을 얻은 뒤, '익스프레션'은 미국 뉴욕에서 초청공연까지 했다. 현재 '마리오네트'는 1시간 30분짜리 정규 공연으로 업그레이드 돼 한국 무대에서 공연중이다. '프리즈'는 비보이에 현대무용과 발레 등을 혼합한 일종의 퓨전으로 시도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판권을 사들여 업그레이드 한 작품이 그 유명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다. 이 작품은 관객의 호응에 힙입어 모 대기업 TV 광고에도 이용됐다. 현재까지 무대에 오른 비보이 공연은 약 8개 정도이며 앞으로도 몇 작품이 더 예정돼 있다. 이 중에는 처음부터 전용관을 잡고 장기 공연으로 기획된 작품들도 있다. 현재 서울 올림픽공원에 전용관을 마련하고 장기 공연을 하고 있는 작품 '발랄하이' 공연 현장과 4월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하고 5월부터 충무아트홀에서 막이 오르는 코믹 넌버벌 퍼포먼스 '피크닉'의 연습 현장을 찾아가봤다. #명랑힙합극 '발랄하이' 한 고등학교에서 무제(舞帝ㆍ춤의 제왕)를 뽑는 대회가 열린다는 게 기본 설정. 장르가 다른 교내 댄스 동아리가 모두 대회에 나와 기량을 겨루는데 비보이는 물론이고, 여성 댄서들, 래퍼 팀까지 나와 우승을 타투는 과정에서 관객들은 다양한 장르의 춤과 음악을 접할 수 있다. 명랑힙합극으로 이름 붙인 '발랄하이'는 비보이와 현대무용, 국악, 랩 등을 섞어 스토리 라인을 입혔다. 대진대학교가 4억 원의 제작비를 지원했는데 기업이 아닌 대학이 거액을 후원한 것도 특이하다. 이 작품은 국악기인 해금 연주, 한국무용의 오고무(五鼓舞)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인다. 비보이 춤만으로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공연을 기성세대까지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의도다. 또한 이 공연에 출연한 여성 댄서들은 정규 교육을 통해 무용을 전공한 무용수들이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에 발레 전공자가 출연하는 것과 마찬가지 맥락. 연출자 김영원 씨는 "비보이를 소재로 한 공연에도 예술적인 면을 넣어 다양한 세대의 공감을 얻기 위한 의도"라고 설명했다.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은 매일 1회, 주말에는 2회씩 공연하는 이 작품은 현재 꽤 좋은 관객 반응을 얻고 있다. 1시간 30분 러닝 타임을 대부분 관객들이 짧게 느낄 정도로 전개가 빠르고 경쾌하다. 일단은 7월까지 전용관 공연 일정이 잡혀있는데 기획사는 연말까지 공연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출자 김 씨는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원작 격인 '프리즈' 기획에 참여했던 인물. 모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의 VJ로 활동하던 시절 힙합 전문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비보이를 접하다 공연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김 씨는 "비보이야 말로 다음 한류로 갈 수 있는 핵심적인 컨텐츠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구성과 탄탄한 스토리, 세련된 무대를 갖추면 비보이가 향후 한류의 핵심 엔진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공연에 출연하는 비보이들의 손바닥에는 하나같이 두꺼운 굳은살이 박혀있다. 고난이도의 동작을 매일 연습하다 보면 크고 작은 부상에도 시달린다. 그러나 무대가 좋고 비보이가 좋아서 계속 춤을 춘다. 그러나 공연 주최사 랄컴퍼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