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勞使로드맵, 급해도 돌아가자
조희제 hjcho@sed.co.kr
초겨울의 추위만큼이나 우리의 노사관계도 을씨년스럽다.
노정간 대화가 끊긴 지도 오래돼 노동계는 이제 정부와 한자리에 앉아 얘기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다. 노사는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대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게 대립돼 있어 타협을 해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한해를 마무리할 시기가 다가온 요즈음 노사정 관계는 폭풍전야의 상황을 맞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노사관계 법ㆍ제도 선진화방안(일명 노사로드맵)의 입법화와 추진을 놓고 노정 사이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마저 돌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달 들어 올 연말까지 노사로드맵 입법예고 완료, 내년 2월 임시국회 처리 강행 방침을 공론화했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최근 "일부 노동계의 참여거부와 반발을 이유로 로드맵 처리를 지연하거나 연기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노동계도 정부의 일방 강행에 화답(?)하듯 총파업이라는 카드를 끄집어냈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 20일 "노사로드맵은 노동자에게 족쇄 채우기"라며 "이를 중단하지 않으면 민주노총과 함께 총력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부와 대화의 창구만큼은 열어놓았던 한국노총이 강경파가 장악한 민주노총의 노선에 동참한 것이다.
노동현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노사로드맵을 놓고 노정이 극한 대립이라는 칼을 뽑은 셈이다.
그런데 이 같은 노정간의 대립상황이 펼쳐지고 있지만 정작 일반 사람들, 특히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그 내용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참여정부가 내놓은 수많은 로드맵 중 하나일 뿐이지 그것이 근로현장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의미가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노사관계는 이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근로자의 40%나 되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또 항운노조원을 상용화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하는가 등등. 올 겨울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기로에 서 있다고 할 만큼 중요한 현안들을 안고 있다. 하지만 노사관계의 새 틀을 짜는 노사로드맵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나 항운노조 상용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정부가 추진하기로 한 노사로드맵(4가지 노동관련법과 관련된 34개 과제)은 노사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안들이다. 이중 정부가 올해 중 입법화하기로 한 24개 과제는 그 파급력이 엄청나다. 실업자도 노조원이 될 수 있나, 노조 전임자에게 누가 급여를 줄 것인가, 허용될 복수노조 체제하에서 사용자측은 누구랑 교섭해야 하나, 그 하나하나가 산업현장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내용들이다.
노사는 '양보나 타협은 곧 죽음'이라는 건곤일척의 심정으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며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고 있다. 여기에다 제3자적인 입장을 가진 전문가나 학계도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을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노동계의 전투적인 투쟁양상은 법과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식과 관행의 문제이기 때문에 선진화했다고 정부가 자부(?)하는 법만 통과시켜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지금도 몇몇 노동법과 제도를 제외하면 상당히 선진화한 노동법과 제도를 갖추고 있다. 노동학계의 한 진보학자는 명분에 집착해 현실을 간과해서는 얻을 게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96년 문민정부 시절의 노동법 개정 파문이 되풀이돼서는 안될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노동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가 여론의 질타와 정치권의 반발로 다음해 재개정해야 했다. 그때도 노동법의 선진화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명분으로 절차와 민심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하다 된서리를 맞았다.
노사로드맵은 우리 노동현장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현안이다. 정부는 시간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급한 일일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되새겨야 한다. 인내심을 갖고 대화를 통해 노동계를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제대로 해봤는지 정부와 여당 스스로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입력시간 : 2005/11/21 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