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김치가 세계서 통하려면

우리 김치는 지난 94년부터 국제규격화를 추진해 2001년 코덱스(Codex) 총회에서 국제식품 규격으로 최종 채택됐다. 한국의 전통식품이 최초로 국제 공인을 받은 역사적인 일이다. 김치를 해외에 소개하려는 노력들도 많았다. 프랑스의 유명 요리학원인 ‘르 코르동 블루’와 협력해 프랑스요리와 접목한 김치요리 20종을 개발해 우리말은 물론, 불어ㆍ영어ㆍ일어로 내놓기도 했다. 김치의 건강기능성과 영양학적 우수성, 항동맥경화 효과, 항암 효과,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예방 효과, 그리고 조류인플루엔자 예방 효능 등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도 속속 나오고 있다. 보도를 통해 외국인이 김치의 매운맛에 반했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고는 한다. 푸른 눈, 하얀 피부의 서양인이 매운 김치가 먹고 싶어 한국을 방문한다는 기사를 접할 때는 뿌듯하다. 정부의 해외 대중매체를 통한 김치의 우수성 홍보와 업체들의 밤낮 없는 시장 개척 노력으로 2004년 약 1억달러에 달하는 3만5,000톤의 김치가 해외로 팔려나갔다. 김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인의 식품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김치를 먹는 만큼 만들어 먹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배추절임에 육지와 바다의 여러 부원료가 만들어내는 맛과 향의 다양성은 헤아려 짐작하기도 어렵다. 지역마다, 집집마다, 심지어 같은 재료를 써도 손맛에 따라 그 맛이 다 다르다고 할 정도다. 그중에서도 고춧가루가 내는 매운맛과 발효가 진행되면서 변해가는 신맛은 김치 맛의 결정체라 하겠다. 외국인들이 한국 음식의 특징을 흔히 강하고 자극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김치의 이러한 특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김치 맛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나 어린이, 김치를 골라먹어야 하는 특이체질이나 식사를 가려야 하는 환자에게 무조건 맵거나 신김치를 권하기는 어렵다. 김치를 좋아하는 일본인이 한국에서 원조김치를 사갔다가 너무 매워 모두 버렸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프랑스인들도 독한 치즈 맛에 적응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듯 아이들도 김치에 적응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일일이 맛을 보고 고를 수 있다면 매운맛이든 신맛이든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포장제품이 많아지고 있어 이 역시 쉽지 않다. 또 경제적 여유가 생길수록 식기호가 다양하고 까다로워진다. 한 집안에서도 맵고 설익은 김치를 좋아하는 엄마, 덜 맵고 푹 삭은 김치를 좋아하는 아빠의 식성이 다르다. 이처럼 소비자의 까다로운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소비자주권 시대 생산자의 사명이다. 매운맛과 숙성도를 분별하기 위해 꼭 김치를 먹어봐야 한다면 소비자는 김치 선택을 주저하게 될 것이다. 김치의 매운맛과 숙성도 표준화가 필요한 이유다. 정부도 이러한 필요성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수년간의 연구 끝에 매운맛과 숙성도를 표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았다. 매운맛은 매운맛을 내는 성분(캡사이신)과 매운 정도(스코빌)를 기준으로 ‘순한-약간 매운-보통 매운-매운-대단히 매운’의 5단계로, 숙성도는 pH와 총산도를 기준으로 ‘미숙성-적당히 숙성-과숙’의 3단계로 구분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이들 매운맛과 숙성도의 다양한 조합에 따라 15가지의 서로 다른 김치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소비자 선택의 폭은 그만큼 넓어지고 선택이 실패할 확률은 그만큼 낮아진다. 김치의 숙성도를 표준화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저장기술도 김치의 발효를 완벽하게 정지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도ㆍ소매 유통 과정에서 저온저장장치가 보편화되고 가정에도 김치냉장고가 많이 보급되고 있어 이전보다는 김치의 신맛 관리가 훨씬 나아졌다. 앞으로도 식품의 온도관리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김치 숙성도 관리의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는 대목이다. 김치 표준화는 한국의 대표식품인 김치가 더 다양하고 더 많은 국내외 고객을 확보하는 발판이다. 김치의 매운맛과 숙성도 표준화가 김치의 세계화와 김치산업의 발전에 첨병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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