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월요 초대석] 이기섭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대담=이용웅 경제부장 yyong@sed.co.kr<br>"돈 있어도 에너지 못쓰는 시대 온다"<br>에너지절약시설등 내년 1조1,000억원 지원<br>산업용 전동기 2008년 고효율 제품 의무화<br>CO₂배출규제 대비 기업들도 대책 서둘러야


“돈이 있어도 에너지를 사용할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이기섭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은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전세계가 기후변화협약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을 직접 규제하기 시작했으며 그 대상도 확대되고 있다”며 이같이 경고했다. 이 이사장은 이런 조류에 발맞춰 국내 전력 사용량의 40%를 차지하며 전기 먹는 하마가 된 ‘산업용 전동기’에 대해 2008년부터 의무적으로 고효율 제품만을 생산, 판매하도록 하는 ‘최저효율제’를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탄소가 곧 수익인 시대가 오고 있다” 며 “내년에도 에너지절약 시설 설치에 5,1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하는 등 공단이 총 1조1,000억원의 예산 지원을 통해 에너지 절약과 신ㆍ재생에너지 보급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30여년의 공직 생활을 접고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됐는데요. 향후 어떤 분야에 가장 역점을 두실 계획입니까. ▦에너지 문제에 대응하려면 크게 3가지 전략이 필요합니다. 에너지 이용효율 향상과 신ㆍ재생에너지 보급확대, 기후변화협약 대응 구축 등입니다. 공단은 에너지 사용이 많은 산업 부문의 기업들이 전사적으로 에너지이용을 합리화하도록 ‘에너지경영’(EQM) 도입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에너지에 정통한 최고경영자를 육성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입니다. -신ㆍ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는 정부에서 오래 전부터 강조해왔지만 성과는 미흡한 것 같던데요. ▦성과가 급진전되지 못하고 있지만 착실히 보급이 확대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정부 예산을 바탕으로 신ㆍ재생에너지 개발 보급사업에 대한 융자 지원을 하고 있는데 올 해 3,600억원의 예산 대부분이 이미 소진됐습니다. 특히 고유가로 인해 기업과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진 점도 도움이 됐습니다. 내년에는 올해 보다 5% 이상 증액된 3,800억원 가량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신ㆍ재생에너지 부문에서 최근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은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오는 2012년까지 태양광 주택 10만가구 보급을 추진 중인데 처음엔 정부 내에서조차 회의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유가 상황에다 태양광 주택 건설에 70%까지 보조금을 주는 인센티브 정책과 맞물리면서 예상보다 순조롭게 태양광 주택 보급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특히 빠른 기술 개발로 태양광 발전 설치단가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어 소비자들의 관심도 높습니다. -기술 발전이 에너지 절약을 좀 더 쉽게 촉진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에너지기술 개발 사업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요. ▦그 동안은 에너지기술 발전을 안정적 공급에 맞춰 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에너지산업의 미래 성장동력’에 초점을 둘 계획입니다. 예를 들어 냉장고(21%), TV(14%), 전기밥솥(11%), 컴퓨터(7%), 세탁기(5%), 에어컨(4%) 등 6대 가전제품이 각 가정 전기소비의 60% 이상을 차지합니다. 우리나라의 냉장고ㆍ에어컨 등의 에너지 효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더 혁신적인 제품이 개발되도록 뒷받침할 것입니다. 에너지 저소비형 공정을 개발할수록 유럽 등 선진국 시장 공략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소비자 모두가 일일이 에너지 절약에 적극 참여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실제 효과를 기대하는 사업이 있으신지요. ▦좋은 지적입니다. 국민 개인이 에너지절약을 생활화하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산업체가 우선 에너지절약에 나서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 공단은 정부와 함께 산업용 전동기에 대해 2008년부터는 의무적으로 고효율 제품만을 생산, 판매하도록 하는 ‘최저효율제’를 시행할 계획입니다. 전동기 효율을 5%만 향상시켜도 전체 전력소비의 2%가 줄고 연간 3,500억원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고효율 전동기의 보급이 70%만 넘어도 전동기 제조원가 상승 부문을 감안해도 약 1조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내년도 공단이 각 사업에 지원하는 융자 및 보조금 예산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요. ▦아직 국회 승인이 남아있지만 계획대로라면 기업들의 에너지절약 시설 설치에 대한 저금리 융자 지원자금이 올해보다 9% 정도 늘어난 5,103억원으로 가장 많습니다. 신ㆍ재생에너지 개발보급 분야는 3,809억원이구요. 지방자치단체의 신ㆍ재생에너지 보급, 에너지절약시설 설치 등에 511억원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집단에너지 공급사업은 민간 투자가 활발해지고 있어 올해 1,856억원보다 지원액을 30% 가량 줄인 1,299억원으로 책정했습니다. 총 1조1,000억원의 정부 지원 예산이 마련돼 있으니 기업과 국민들이 적극 활용하길 바랍니다. - 기후변화협약에 따라 교토의정서 이후인 2013년부터는 한국도 온실가스 의무감축 대상국에 포함될 수도 있는데요. 우리 기업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에너지 절약, 즉 탄소배출 감축이 돈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가령 교토의정서에 보면 청정개발체제(CDM)가 있는데 이산화탄소(CO₂) 의무감축대상국이 개도국에서 온실가스 감축 사업을 벌이면 이를 인정 받거나 감축분에 상응하는 배출권을 내다팔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유럽지역에서는 CO₂가 톤당 20유로에 거래되기도 합니다. 에너지관리공단은 개도국에서는 처음으로 지난해 말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으로부터 CDM사업 인증기구로 지정을 받았습니다. 기업들이 에너지절약을 곧 수익으로 인식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나가면 국가적 부담도 줄고 개별적으로 이익도 볼 수 있는 셈입니다. -한때 배럴당 80달러에 육박했던 국제유가가 다소 안정을 찾은 것 같습니다만 여전히 기름값은 높습니다. 4년째 지속되고 있는 고유가를 어떻게 보시는 지요. ▦신고유가는 ‘급증하는 에너지소비’와 ‘한정된 에너지자원’이라는 두 가지 사실이 충돌하면서 빚어졌습니다. 고유가 현상이 단시일 내 해결될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에 일시적ㆍ예외적 상황으로 여기면 오판입니다. 세계 석유 수요에 비해 원유 생산능력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유가는 언제든 추가로 급등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절약이 부딪친 문제, 좀 신랄하게 얘기하면 에너지관리공단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절약은 기본적으로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홍보마저도 재미와 멋이 없으니까 에너지 절약을 소비자들이 더 진부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에너지 절약 홍보에 재미와 멋을 지속적으로 살려나갈 생각입니다.(이 이사장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에너지절약 캠페인 ‘난(暖) 2018’행사에 ‘사모님’으로 유명한 개그우먼 김미려씨를 초청해 관객들의 높은 관심을 샀다. 또 내복의 멋을 강조한 내복 패션쇼도 선보였다.) -원론적으로 ‘에너지절약’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생활에서는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만.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사실 에너지 절약을 낡고 진부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교토의정서 발효에서 보듯 전세계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저감 압력은 갈수록 높아질 것입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 한국이 온실가스 의무감축 대상국에 포함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유럽ㆍ일본 등 선진국마저 에너지절약을 경제와 환경을 지키는 미덕으로 여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에너지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절약 운동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난방온도 3도만 낮춰도 에너지 20% 절감 가능
李이사장이 말하는 에너지절약 비법
겨울철을 맞아 에너지 절약을 실천할 비법(?)에 대해 에너지관리공단 수장의 강의를 요청했다. 이기섭 이사장은 "인기 떨어지는 데…"라며 웃더니 "적정난방 온도 준수"를 시작으로 "요리는 가급적 가스레인지를 이용하라"는 사소한 부문까지 일사천리로 나섰다. "동절기에 접어드는 11월이 에너지 절약의 달"임을 새삼 강조한 이 이사장은 우선 "실내온도를 3도만 낮춰도 20%의 에너지 절약이 가능하다"며 적정 난방 온도인 18~20도를 지켜보라고 권했다. 동절기에 역점을 둘 국민캠페인 '난(暖) 2018'을 재강조한 것이다. '내복 입기'와 '겹쳐 입기'도 강조했다. 내복을 입으면 체감온도를 3도 이상 높일 수 있고 사무실 등에서 덧옷 등을 입으면 난방 온도를 높일 필요성이 크게 줄어든다는 얘기였다. 이 이사장은 "내복을 답답하거나 불편하게 생각하면서 '천덕꾸러기' 대하는 시각이 적지 않은데 실사구시(實事求是)로 볼 때 '내복 입기' 보다 겨울철에 좋은 아이디어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 들어온다는 말도 있지 않느냐"며 겨울철 외풍을 잘 막는 일도 에너지 절약의 첩경임을 강조했다. 문풍지나 방풍비닐로 창틈, 문틈을 막으면 난방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관료시절 전력산업구조개혁담당관을 지냈던 이 이사장은 해박한 전기지식을 이용한 에너지절약 가이드도 소개했다. 그는 "우리나라 주택용 전기요금은 누진제가 적용돼 소비전력이 큰 전열기를 오래 사용하면 전기료가 급증하는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소비자의 주의를 촉구했다. 아울러 전기는 가스나 석탄, 원자력 등 1차 에너지로 열을 발생시키는 고급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취사나 요리는 가급적 가스레인지를 이용하는 게 합리적인 에너지 절약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CEO대상 에너지경영 연수 추진" 이기섭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은 에너지 절약이 실제 효과를 거두려면 '덩치 큰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기업에 '최고에너지경영자'(Chief Energy Officer)가 많아지도록 하겠다는 포부도 여기서 출발했다. 이 이사장은 "기업체 CEO를 대상으로 전반적인 에너지 경영의 필요성을 홍보하면서 전문 경영연수 과정도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전체 에너지 소비의 55%를 차지하는 산업계의 소비를 줄이려면 최고위층의 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문이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공단 업무를 강화하는 차원이기도 하다. 이 이사장은 또 에너지 절약에 관한 조기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가능하면 실질적 효과와 사례, 생활의 이점 등을 초등학교 교과서에 넣어 청소년들이 절약 습관을 어려서부터 몸에 배도록 할 생각이다. 그는 "한번 몸에 익힌 습관은 오래 가게 마련" 이라며 "에너지 절약처럼 실천이 중요한 분야는 평생을 가더라도 고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산업자원부 공보관을 역임한 이 이사장은 은연중에 에너지 과소비를 부추기는 각종 광고 및 기업활동에 대한 주의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에너지 절약 업무는 사실상 홍보가 성패를 좌우한다" 며 "기업들이 에너지 윤리에서 일탈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한편 국민에게 재미있고 멋있게 에너지 절약을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약력 ▦55년생 ▦인천광역시 ▦중앙고ㆍ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미 밴더빌트대 경제학 석사 ▦77년 행정고시 21회 합격 ▦79년 경제기획원 사무관 ▦95년 통상산업부 주 독일대사관 참사관 ▦2002년 국무조정실 농수산건설심의관 ▦2003년 산업자원부 공보관 ▦2005년 정보통신부 전파방송정책국장 ▦2006년 산자부 무역위 상임위원 ▦2006년 10월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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