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및 경제사회정책 등을 협의하는 국내 유일의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이하 노사정위)가 수개월째 공회전(空回轉)을 거듭하고 있다. 노사정위가 ‘개점휴업’에 들어가면서 올 노동계 최대 현안인 복수노조 허용,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비롯해 비정규직법 개정 등 노동 관련 법ㆍ제도 개선을 위한 노사정 간 대화가 거의 ‘올스톱’된 상태다. 노사정위는 이달 말부터 법ㆍ제도 개선 논의를 시작할 방침이지만 대표성 부족과 조정기능 부재 등으로 인해 노사정 간 합의를 이끌어내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복수노조ㆍ전임자 문제 논의 ‘차일피일’=21일 정부와 노동계에 따르면 노사정위는 복수노조ㆍ전임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조만간 노사관계선진화위원회(가칭)를 구성ㆍ출범한다. 복수노조ㆍ전임자 문제 등을 논의할 예정이었던 기존 노사관계발전위원회가 공익위원 재위촉이 지연되면서 사실상 지난 3월부터 활동이 중단된 상태인데다 위원회 존속기한이 오는 10월로 만료됨에 따라 새로운 회의체를 구성하기로 한 것. 최근 노동부가 국회 업무보고를 통해 복수노조ㆍ전임자 문제와 관련, 12월까지 정부안을 마련, 제출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노사정위는 가급적 빨리 대화창구를 열어야 하는 상황이다. 김대모 위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정부의 입장이 정해지면 노사 의견을 수렴해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논의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사정위는 아직 노ㆍ사ㆍ정ㆍ공익 등 17명의 위원도 정하지 못한 상태여서 논의가 시작되기까지는 상당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노사정위를 통한 논의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복수노조ㆍ전임자 문제와 관련한 입법화는 올해를 넘겨 내년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한 노사 간 입장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애당초 노사정위를 통한 합의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면서 “이 문제는 결국 비정규직법처럼 노사정위라는 틀을 떠나 국회에서 정치적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합의보다 협의의 장으로 활용” 주장도=이 같은 노사관계 법ㆍ제도 개선 논의뿐 아니라 비정규직대책, 공공부문 선진화 등 다른 의제별ㆍ업종별 현안에 대해서도 노사정위의 역할이 극히 미미하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4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비정규직대책위원회는 그동안 27차례나 전체회의를 가졌지만 지금까지 비정규직법 입법에 따른 효과분석 정도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9월 출범한 공공부문위원회 역시 공공부문 선진화 논의는 하지도 못한 채 투명ㆍ윤리경영 강화, 서비스 향상 및 사회적 책임성 강화와 같은 알맹이가 없는 ‘맹탕’ 합의문만을 도출한 채 지난달 활동을 접었다. 올해 노사정위가 노사 합의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합의문을 채택한 것은 고용보험제도개선안이 유일하다. 노사정위는 1998년 출범 당시 정리해고와 노동기본권을 바꾸는 대타협을 이루며 경제위기 극복에 일조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별다른 성과를 내놓지 못한 채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주요 대화상대인 민주노총이 10년째 대화를 거부하고 있어 노사정위의 대표성이 떨어지는데다 대립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노사 양측을 조정하는 기능이 부족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 사회적 합의를 이룰 동기가 미약해지면서 노사정 모두 대화와 협의과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다 노사정이 너무 합의에 집착하다 보니 정작 중요한 현안에 대해서는 내용이 없고 실행력도 떨어지는 합의만 하고 있다”며 “그러나 사회적 대화기구로서 노사정위의 존재가치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합의기구보다는 협의와 의사소통의 장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