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년 전 우리 사회는 온통 흥분에 휩싸였다. 5년간 나라를 이끌 새 대통령을 뽑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많은 국민들은 지지후보에 따라 생각이 다르고 편이 엇갈렸지만 선거 당일만큼은 목소리를 낮추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제는 분열과 갈등을 접고 새로운 앞날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충만했다. 이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당선이 확정된 여당후보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밝혔고, 패자는 깨끗하게 정계를 은퇴함으로써 한국정치에 새로운 가능성을 마련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로부터 꼭 1년이 지난 오늘, 정치공간의 균열에 의해 피폭된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2002년 12월 19일과 오늘의 화보를 잇대어 붙인다면 그 제자리걸음, 아니 뒷걸음질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열띤 경쟁을 벌였던 후보들이 연출해야 할 아름다운 화해의 모습은 고사하고 승자와 패자 모두 아픈 상처에 신음하고 정국은 더욱 분열됐을 따름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정치권이 일으키는 엄청난 파장과 후유증이다. 세계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이름이 경제면이 아닌 정치, 사회면에 연일 등장하면서 외국 투자자들은 의혹의 눈초리를 키우고 있다. 우리 경제가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개도국형 경쟁력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국제경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16세기 초 영국은 종교분쟁, 강대국의 위협, 화폐가치 급락, 급격한 인플레 등 정치와 경제 양면에서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고, 이 과정에서 엘리자베스 1세의 리더십을 지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녀는 가톨릭과 영국국교회의 권력다툼에서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외톨이로 자랐지만, 정치란 `합치는 것이고 어울리는 것`임을 믿었다.
`황금의 연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1601년 의사당 고별 연설에서 엘리자베스 1세는 “단언컨대 우리보다 더 국민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으며, 나 역시 국민들의 사랑을 어떤 보물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나를 왕의 지위에 올려놓은 것은 신이지만, 내 왕관의 영광은 바로 의회와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통치할 수 있었던 데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상생과 번영을 위한 리더십의 정치가 절실하다. 이제부터 1년 뒤, 오늘에 잇댈 화보에서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아니 발견해야 한다는 믿음을 다시 한번 가져본다.
<이석영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