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이달 들어 이미 100억달러가량을 외환시장에 개입한 결과 1,050원대로 치솟던 환율을 1,000원 가까이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대량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으니 앞으로 외환시장에 얼마든지 더 개입할 충분한 여력이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정부 당국자들의 장담은 반드시 헛기침으로 판명나게 돼 있다.
필자가 지난 40여년간 국제금융을 공부해오면서 내 학생들에게 가르쳐온 말은 “한 나라의 재무부 장관이 TV앞에 나서서 절대로 환율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면 반드시 환율변동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야 하며 그 나라의 총리까지 나와서 그 약속을 또 반복하면 바로 며칠 안으로 환율변동이 있을 것이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총리까지 나서서 환율 고수를 약속할 정도가 되면 이미 환시장의 대세는 정해진 것이고 세계의 어느 나라도 환시장과 싸워 이길 수는 없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지금 2,581억달러에 이르고 전세계 외환보유액은 그 27배인 약 7조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세계 환시장의 하루 거래량이 약 3조5000억달러이므로 전세계의 모든 외환보유액을 다 투입한다 하더라도 세계 환시장의 2일 거래량밖에 안 된다. 국제 환시장 거래자들의 단기자금 출처 중의 하나인 유로권(Eurocurrencies)시장의 규모는 19조달러에 달한다.
그러므로 자기나라의 총알(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 자만에 빠져 인위적으로 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조작하려고 덤벼든 나라치고 코피 터지고 물러나지 않은 나라가 없다.
지난 1992년 9월 영국과 이탈리아가 그랬고 1997년 홍콩정부가 그랬으며 2003~2004년 3조원의 국가 손실만 내고 실패했던 한국이 그랬다. 또 주위에서 영국 같은 대국의 장담을 믿고 환시장에 손을 댔다가 1992년에 5조2,000억달러를 손해 본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이 있는가 하면 영국 재무상의 장담보다는 시장의 힘을 더 믿고 그 정반대로 승부수를 겨뤘던 조지 소로스는 1조달러를 한 달 만에 벌었다.
중국 같이 외환거래를 철저히 규제하지 않고 우리나라처럼 환거래가 비교적 자유스러운 나라에서 정부가 앞장서서 환시장에 개입해 근본적으로 환율조정을 추구하는 것은 국제금융을 너무 모르는 순진한 행동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미국 같은 대국도 대통령과 재무장관이 입으로는 “강한 달러”를 얘기하지만 실제로 외환시장에는 직접 개입하지 않고 소위 ‘은근한 외면(benign neglect)’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환시장에 개입해 환율조정을 할 생각은 하지말고 다만 분명한 투기세력의 시장교란이 포착될 때에만 환시장의 안정적 차원에서 한시적으로만 개입해야 한다.
특히 물가안정을 위한 저환율 정책은 성공하지 못하다. 물론 지난달 5.5%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은 지금 심각한 정도에 달했다. 인플레이션은 경기과열로 인한 ‘demand-pull’ 형태와 지금 한국이 처한 것처럼 고유가ㆍ고원자재 때문에 생기는 ‘cost-push’ 형태가 있는데 후자가 치유하기가 훨씬 더 힘들다.
전자의 경우에는 긴축 재정ㆍ금융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별 뾰쪽한 단기 처방책이 없다는 데 정책 당국자들의 고민이 있다. 특히 올 하반기에는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4% 이하로 내려설 것으로 전망돼 스태그플레이션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지금 긴축정책은 적합하지 않다.
다행히 미국은 고물가→고임금→물가상승→경기침체로 연결되는 1970년대식의 스태그플레이션은 국제화와 중국ㆍ인도ㆍ동남아 국가들의 수출품 때문에 가격상승이 어렵고 노동조합의 쇠퇴로 고임금 체제가 후퇴된 덕분에 이번에는 덜 우려되고 있다.
그러나 내수 약화와 투자부진 및 열악해진 수출환경으로 둔화된 우리의 경제성장률에 ‘cost-push’형 인플레이션까지 덮쳐 정책 당국자들은 인위적인 저환율 정책 등 임기응변적 대응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보다 솔직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정공법적 정책을 과감하게 채택해야 한다. 각종 규제철폐와 노사문화 개선으로 투자를 촉진하고 중소기업을 육성하며 낙후한 서비스 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거국적 경제중흥정책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