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득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기업 발전이야말로 노사 공동의 목표입니다." 한국 노동운동의 방향 전환을 주도해온 이용득(사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노와 사는 경제주체로서 제2의 경제도약을 일궈내야 한다"며 노동계와 사용자 모두의 변화와 혁신을 주문했다. 이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시대에도 한국의 노사관계가 여전히 기존의 낡은 틀, 낡은 인식에 머물러 있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다. 이 위원장이 보는 우리 노동운동의 현주소는 이렇다. 지난 87년 이후 기득권을 확보해온 이념주의적 운동세력과 70~80년대 어용노조시대의 관성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잔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대한 비판 치고는 가슴 뜨끔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이 위원장은 무엇보다 대화와 협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실제 한국노총은 최근 '사회개혁적 노동조합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노동운동을 뿌리부터 바꿔가고 있다. 과거와 달리 '투쟁을 위한 투쟁'이나 '전부 아니면 전무식 투쟁'을 철저히 배격하면서 노사관계 로드맵, 노사정 대타협 등의 값진 결실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가 최근 정부기관과 함께 해외를 돌며 기업인들을 만나 변화하고 있는 한국 노동운동의 모습을 생생한 목소리로 전달하는 것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단지 말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새로운 노동운동을 앞장서 개척해나가겠다는 그의 평소 지론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또 경영진에 대해서도 전근대적 경영철학을 과감히 벗어던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과거 70∼80년대 개발독재시대의 경우 모든 힘을 재계에 실어줬기 때문에 경제적 기적이나 기업 신화가 가능했지만 이제 경영자 일방의 노력만으로는 기적과 신화가 불가능하다는 게 이 위원장의 판단이다. 노조를 백안시하는 것이나 시장통 거래식의 노조관은 오히려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점에서 이 위원장의 배 이야기는 귀담아들을 만하다. "작은 배는 선두가 방향을 이끌 수 있지만 규모가 큰 배는 선두와 선미가 한방향으로 움직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노사가 대등하다는 생각을 갖고 기업발전과 사회공헌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경영계가 바라는 노사관계는 (노사 화합과 협력으로) 생산성을 높여 근로자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고 기업은 강인한 생존력을 키우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갈등과 분쟁ㆍ마찰로 점철된 한국의 노사관계에서 오랜 기간 사용자 측(경영진)을 대변해왔던 이수영(사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사관계 변화에 대해 어떤 진단을 내리고 있나. "다행스러운 것은 상생과 화합을 향해 변하려는 모습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산업현장에서 노사화합 선언이 잇따르고 있으며 임단협도 예년에 비해 원만하게 마무리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노사관계가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분명히 변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회장은 하지만 "한국의 노사관계는 이제 겨우 상생과 화합의 싹이 트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상생의 노사관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며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노동조합이 과도한 요구와 불법투쟁을 연례행사처럼 하는 노동조합보다 우대받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 출발점은 '불법필벌'의 확립입니다." (노나 사 모두가) 몹시 과장돼 있는 한쪽의 논리나 이해만을 관철시키려다 보면 불법이나 탈법적 행위를 하기 십상이라는 점에서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보다 '법과 원칙'이 존중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민주노총이 올 들어 '무분별한 파업을 자제하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또다시 불법투쟁을 강행하는 주요 원인에 대해 정부가 불법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질타한다. "최근 진행되는 노사관계 변화의 흐름이 우리 노사문화의 주류로 자리잡아가기 위해서는 '법과 원칙의 준수'라는 당연한 명제가 보다 확실히 실천될 필요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밀면 밀린다'는 식의 정당하지 못한 사고와 '불법도 밀어붙이면 합법이 된다'는 식의 무모한 사고가 노동운동의 저변에 확산돼 있습니다." 이 회장은 "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공통 현안"이라고 전제한 뒤 "노사 상생과 화합의 관계를 착근시키기 위해서는 '법과 원칙'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노조요구 적당히 수용 관행 귀족·권력노조 탄생 불러" “미국 자동차 산업은 정치파업에 휩쓸려 쇠락을 길을 걸었습니다. 현대자동차 노조도 임단협과는 상관 없는 정치적인 문제로 파업을 강행한다고 하니 미국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지난 21일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한 수전 헬퍼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교수는 현대차 노조의 정치파업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헬퍼 교수는 현대차 노조가 하루빨리 정치적인 이슈에서 벗어나 조합원의 권익에 초점을 맞춰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투쟁중독의 특효약 ‘법과 원칙’=그동안 한국의 노조가 강경 일변도로 권력을 유지하게 된 배경에는 대기업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는 게 노동계 안팎의 지적이다. 한 대기업 노무담당자는 “노동조합이 파업기간에 대해서도 특별상여금 등 다른 형태를 통해 임금을 지급하도록 압박할 때마다 사용자 측은 울며 겨자먹기로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노조의 요구를 적당히 수용해주는 관행이 귀족노조와 권력노조의 탄생을 가져왔다”고 꼬집었다. 헬퍼 교수와 함께 MIT대 국제자동차프로그램(IMVP)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대학원장은 “현대차 노조가 이번 기회에 기존의 관행을 깨고 노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현대차 노조는 파업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잘못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이제는 노사가 손잡고 윈윈(win-win)하지 않으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번 정치파업을 계기로 현대차는 ‘법과 원칙’을 고수하는 전례를 남기고 노조는 근로자를 위한 본래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섭 현대ㆍ기아차협력회 회장 역시 “법이 엄정하게 지켜지는 풍토가 정착되면 노사관계는 정돈될 것”이라며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단순한 싸움이므로 링 안에서 규정을 지켜가면서 평화적으로 노사문제를 해결하면 풀리지 않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사문화, 이제는 바꿀 때다=올해로 지난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벌인 지 20년째를 맞았다. 우리나라 노사관계도 성년이 된 셈이다. 하지만 아직도 성년에 걸맞은 성숙한 노사문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절실한 시점에 우리의 노사관계는 기업의 경쟁력 저하와 투자 기피, 이에 따른 일자리 부족현상을 심화시켜왔다”면서 “이제는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노사 양측이 변화된 경제 및 사회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과거의 관행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에 괴리가 생기고 충돌이 일어난다”면서 “노조운동가, 기업의 노무관리자 모두 인적쇄신을 통해 새로운 노사관계를 형성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덧붙여 정부도 수시로 바뀌는 정치풍향에 따라 권위와 신뢰를 훼손하지 말고 중장기적인 노동정책을 수립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라도 노ㆍ사ㆍ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서로 협력하는 노사문화를 꽃피워야 한국 경제가 상생과 협력의 노사관계를 발판으로 제2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되새겨야한다. 27일과 28일 전면 정치파업을 앞둔 상황에서 현대차 등 금속노조 산하 노조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