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대적인 '채무 탕감'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행복기금 설립 공약에 대한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우려가 기금이 설립되기도 전에 현실화된 것이다.
19일 금융계에 따르면 1월 말 은행의 집단대출 연체율은 2.0%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집단대출은 아파트 분양자들이 입주를 앞두고 건설사에 지급해야 하는 중도금과 이주비 등을 단체로 빌리는 것이다. 1인당 평균 대출금은 1억5,000만~2억원이다.
집단대출 잔액이 19조원인 농협은행의 연체율은 2011년 말 1.4%에서 이달 중순 3.5% 가까이 치솟았다. 집단대출 잔액이 23조원으로 가장 많은 국민은행의 연체율도 같은 기간 2.2%에서 2.9%로 급등했다. 이들 은행의 집단대출 잔액을 합치면 42조원으로 은행권 전체의 약 40%를 차지한다. 집값 하락과 함께 새 정부의 지원대책 기대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은행권은 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 대출금을 갚고 입주하면 정부의 부동산 대책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신용불량자(금융채무불이행자)들도 모럴해저드가 나타나고 있다. 은행연합회가 집계한 3개월 이상 채무불이행자는 1월 말 123만9,000명이며 이 가운데 6개월 이상 채무불이행자가 112만5,000명으로 90.8%를 차지한다. 신용회복위원회가 신용불량자의 채무 장기분할 상환을 유도하는 신용회복 프로그램에는 114만명이 신청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30만명(26.3%)이 중도에 탈락했다.
연체 기간이 길어지고 상환 포기가 속출하는 배경에도 새 정부의 연체 채무자 구제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대출금의 50~70%를 깎아주고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해준다는 소식에 '빚을 안 갚는 게 상책'이라는 심리가 퍼졌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요즘 채무자의 버티기가 굉장히 심각하다"며 "국가 경제에 매우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