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말이 무색치 않았던 닭띠 해. 경제분야서 가장 아쉬웠던 일로는 누구나 “기대만큼 경제가 빨리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을 꼽는 해였다. 반짝 연말경기를 제외하고는 한해내내 재래시장에서나 백화점에서나 웃음꽃을 찾기 힘들었고 기업들의 씩씩한 투자 발걸음도 역시 더뎠다. 냉온탕을 오간 부동산 시장이나 급변한 세금제도도 기억거리다. 이제야말로 제대로 경기가 풀렸으면 하는 희망은 병술년(丙戌年) 개띠해에도 이어진다. 소망이 현실로 바뀌는 데는 해야 할 일, 신경 쓸 일들이 많다.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이나 수년 묶은 규제족쇄 해제는 정부가 잡아야 할 토끼들이다. 변화하는 대내외 여건에 발맞춰 생존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은 가계와 기업의 몫이다. 새해 한국경제호(號)의 갈 길과 지평선을 열어줄 10대 경제 이슈들을 집어본다. ① 경기회복세 본격화여부 주목 ‘상고하저’(上高下低)의 모습이 전망된다. 신용카드 사용액 등 민간소비 증가세가 눈에 띠는데다 2005년을 수놓은 수출호조세는 새해도 두자릿수 성장률을 이어갈 거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이로 인해 상반기 민간소비 증가율은 4%대에 이르는 한편, 새해 성장률은 5%내외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내수의 핵심축인 건설경기가 부진한데다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상대적으로 둔화된 점이 걱정거리다. 마무리 되지않은 가계부채도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늘어난 만큼 금리나 부동산 시장의 여파로 가계가 또 한번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하반기 들어서는 세계경제의 성장둔화나 환율하락으로 수출증가세가 한 풀 꺾일 것이란 진단도 나오고 있다. ② 일자리 얼마나 늘어날까 내수 회복으로 인한 취업시장 활성화 여부도 관심거리다. 경기후행지수로 꼽히는 고용은 2005년 하반기부터 뒤늦은 회복세를 보였다. 2ㆍ4분기 이후 취업자 수가 늘면서 11월까지 평균 30만 8,000명의 취업자가 증가했고, 실업률도 3%대 초반으로 낮아졌다. 자신감을 얻은 정부도 새해 사회적 일자리 등 최소 35~40만개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문제는 고용의 질이다. 늘어난 일자리의 상당수가 임시, 일용직 등 비정규직 취업에 불과한데다 정부가 내세우는 사회적 일자리도 번듯한 정규직과는 거리가 먼 상황. 여기에 기업의 설비투자 부진이 예상보다 더 할 경우 대학졸업생들의 신규취업시장도 둔화될 가능성도 있다. 건설경기 부진으로 인해 일용직 근로자 등 저소득층의 고용 사정도 고용증대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③ 부동산시장 어떻게 움직일까 쓰나미와 같았던 8.31 대책이 부동산 시장에 미칠 여파도 주목된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새해에는 세금증가를 우려한 주택보유자들이 매물을 대거 내놓는 반면, 주택매입 수요는 줄어들어 주택가격이 떨어져야 한다. 여기에 금리인상과 주택대출 규제 강화도 가격하락을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전망도 있다. 시장금리가 오르면 유동자금이 금융권으로 흡수되는데다 대출부족으로 부동산에 대한 구매수요도 줄어들어서다. 아파트 입주물량이 쏟아지면서 공급이 확대될 경우 가격하락폭은 더 커진다. 그러나 하락요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벌써부터 강남지역 재개발 아파트값이 들썩거리기 시작한데다 8.31 대책의 파괴력이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인식도 있다. 이를 의식한 정부도 후속대책으로 청약 및 분양제도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안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④ 근로소득세등 세금제도는 2005년 하반기동안 ‘세수가 부족하다’는 정부의 푸념이 줄곧 이어졌다. 이것저것 선심성으로 깎아준 세금이 많아 나라 예산으로 쓸 돈조차 모자란다고 한다. 이러니 앞으로 세금을 더 거둘 수 밖에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한때는 서민의 술인 소주세금을 올리는 복안까지 나왔지만 성난 민심에 결국 없던 일이 됐다. 그러나 도시가스(LNG) 요금 등은 정부안대로 오른다. 새해를 기점으로 정부는 세금수입 기반을 넓히기 위해 중장기 세제를 대거 개편한다는 방침이다. 여당 일각에서 논의되는 대로 8~35% 세율의 갑근세 체계가 다소 바뀔 수도 있다. 매년 조정해 준 면세점(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기준점)을 고정시켜 과세자를 더 넓히는 방안도 마련된다. 이밖에도 정부는 소득을 숨겼던 일부 자영업자나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는 기술도 선보일 예정이다. ⑤ 의료·교육·문화 규제 완화 지난 2005년 내내 ‘개방의 필요성’과 ‘보호논리’의 충돌이 야기된 의료, 교육, 문화 분야의 규제완화 방안도 관심거리다. 의료분야에서는 영리의료법인 허용여부와 민간 의료보험 도입이 가장 큰 화두다. 해외의료산업이 국내 어디까지 진출할지도 궁금한 상황.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의료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이들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과 공공 의료보험의 기본 틀이 무너질 수 있다는 반대논리가 팽팽하다. 외국교육기관이나 해외교사의 국내 진출이 어디까지 이뤄질지도 궁금해진다. 대외통상 마찰을 야기하므로 줄여야 한다는 논리와 자국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이 부딪친 스크린쿼터제의 생존여부도 새해를 관통할 이슈로 꼽히고 있다. ⑥ 심상치 않은 환율과 금리 한편 새해에는 환율변동과 금리요동이란 양대요인으로 인해 금융시장이 만만찮은 충격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달러화 약세전환이다. 미국의 경기둔화세와 함께 금리인상이 마무리되면 또 다시 달러값이 떨어지고 원화가치가 오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추가적인 위안화 절상이 있을 경우 더 큰 폭의 환율하락도 우려된다. 넘쳐나는 불확실성으로 시중금리가 급등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경기회복세로 인한 물가상승 압박으로 추가적인 콜금리 인상이 예견되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폭이 적을 경우 국내외금리역전을 막기위해서라도 선제적인 대응차원에서 금리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지나친 금리인상으로 인해 내수회복에 브레이크가 걸리거나 가계채무의 부담이 높아질 수 있다는 걱정거리도 무시하기 어렵다. ⑦ 양극화의 덫 지난 2005년 주목을 받은 사회문제 1순위로 너나할것없이 모두 양극화 현상을 꼽게 된다. 오랜 기간 겪은 경기침체의 여파로 인해 생존능력이 부족한 영세자영업자나 저소득층 및 취약계층이 엄청난 고통을 겪은 점이 대표적이다. ‘빈익빈 부익부’로 대변되는 빈부격차 현상도 더 벌어지고 있다. 매 분기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수지동향’에서는 소득상위 20%와 하위 20%간 격차가 최대 7~8배까지 이르는 현상이 보인다. 보다 못한 정치권과 정부는 올해 국정운용의 핵심으로 ‘양극화 해소’를 내걸었다. 저소득 빈곤층의 생계를 지원할 사회안전망을 늘리고 이들이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겠다는 게 골자다. 근로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다는 선진국형 EITC(근로소득보전세제)의 도입여부가 대표적인 정책으로 꼽힌다. 그러나 사회구조적으로 정착돼버린 양극화 현상을 몇몇 제도만으로 쉽사리 해결하기는 어려워보이는 게 사실이다. ⑧ 저출산·고령화현상 대책은 아이는 적게 낳는데 노인계층만 늘어나면서 사회를 지탱, 부양할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다. 무엇보다도 이 같은 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어 한시라도 빨리 이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할 것으로 지적된다. 정부는 2006년을 저출산 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한 원년으로 꼽고 있다. 출산, 육아를 보조하기 위한 각종 지원제도와 함께 임금피크제도, 노인요양보장제도 등의 시행이 줄을 이을 전망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최소 7조원에 이르는 돈이 추가로 필요하지만 당장 예산으로 쓸 세금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교육제도의 근본변화 등으로 애 낳아 키우기 힘든 구조적 현실을 개선하지 않은 채 애 낳으면 보조금 몇만원 던져주는 실효성없는 제도로는 저출산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⑨ 국제유가 오름세 하늘 높은 줄 모르던 국제유가 상승세가 예전에 비해 다소 가라앉기는 했지만 앞을 가늠하기 힘든 유가는 새해 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05년 8월말 배럴당 70달러(WTI기준)까지 오른 국제유가는 다행히 12월 들어 50달러 후반까지 떨어진 상태다. 미국내 석유수요가 줄어들었고 전략비축유도 각지에서 방출돼 공급량이 늘어난 탓이다. 그러나 이라크 등 산유국들의 불안요인이 언제 어떤 사건으로 터질지 모른다. 게다가 ‘블랙홀’ 중국의 엄청난 원유수요가 여전히 살아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12월 보고서에서 세계 석유의 수요전망치를 상향조정했다. 공급은 줄거나 제자리인데 수요만 늘면 가격이 급등하는 것은 경제학의 기초원리다. 유가가 얼마나 뒤어오르냐로 인해 내수기반 경기회복세도 큰 변화를 맞을 수 있다. ⑩ 대외개방과 협력의 파고 발빠르게 진행된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일정이 새해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당장 아세안과의 FTA 체결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데다 3, 4차 협상뒤 양허안을 마련할 캐나다와의 FTA도 머지 않았다. 이밖에도 캐나다, 메르코수르(MERCOSUR: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인도, 중국, 멕시코, 일본 등 총 25개 국가들과 경제협력도 추진중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와 직결된 미국이나 한ㆍ중ㆍ일 FTA 등은 아직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스크린쿼터 등을 이유로 한치 진전도 없는 미국과의 협정이나 중ㆍ일 관계의 여파와 상충된 이해관계로 맥을 못추는 3국 FTA가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 수백명의 농민시위대 연행을 야기한 홍콩 WTO 각료회의로도 진전을 보지 못한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도 새해의 과제다. 모두가 인정할 방안을 내놓아야 할 협상기한이 2006년말로 잡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