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4일(현지시간) 슬로베니아에서 정례통화정책회의를 열고 10월 기준금리를 현행 0.75%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드라기 총재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경제 성장세가 당분간 약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나 추가 기준금리 인하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지난달 국채 매입 프로그램 발표 이후 유로존 해체 공포가 크게 완화됐다"면서 "스페인 정부가 금융과 노동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개혁성과를 이루고 있다"고 진단했다. 스페인은 이날 2~5년물 국채 39억9,000만유로어치를 기존보다 낮은 금리로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국채 매입 프로그램'과 관련해 드라기 총재는 "일정 조건이 만족될 경우 즉각 국채를 사들이겠다"고 강조했다. 스페인이 전면 구제금융을 신청하면 ECB가 행동에 나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스페인이 빠르면 이달 안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으나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는 결단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시장에서는 스페인이 전면 구제금융 대신 '제3의 길'을 택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유럽연합(EU)이 스페인 국채에 지급 보증을 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이날 EU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스페인이 발행하는 국채를 사들이는 투자자에게 일종의 보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유로안정화기구(ESM)의 자금을 활용해 스페인이 발행하는 국채의 일부를 지급 보증하면 투자자들이 마음 놓고 국채를 사들일 수 있어 국채 금리가 하향 안정화된다는 게 이 계획의 골자다. 여기에 필요한 비용은 연간 500억유로(72조원)가량으로 스페인이 전면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것보다 재정 부담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ECB는 유통시장에서 스페인 국채를 매입해 국채 금리를 끌어내리는 데 동참하게 된다.
이 같은 우회방안이 수면 위로 떠오른 이유는 전면 구제금융이 이뤄질 경우 스페인은 물론 유럽 각국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또 '다음 타깃은 어디냐'라는 불안감이 확산돼 가까스로 소강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이탈리아 금융시장이 또다시 출렁일 가능성이 크다. 유타 우르필라이넨 핀란드 재무장관은 최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을 가진 뒤 "우리의 공공 자금을 지키기 위해 ESM을 통한 국채 발행시장 개입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EU는 ESM을 통한 개별국가의 직접 재정 지원을 금지하고 있어 현실화 여부는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