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11일] 무연탄의 재발견

‘말도 안 돼.’ 무연탄으로 난방을 했다는 한 사냥꾼의 꿈 얘기에 모두가 코웃음 쳤지만 저지 펠(Judge Fell)은 진지하게 들었다. ‘한번 해보자.’ 1808년 2월11일 이뤄진 실험 결과는 ‘성공’. 별도 기구 없이도 무연탄에 불이 붙었고 오래 갔다. 그을음도 많지 않았다. 가격도 나무보다 쌌다. 무연탄은 서민들의 난방용 연료로 애용되기 시작했다. 그리스 시대부터 석탄을 사용했다는 인류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무연탄을 본격 사용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 유연탄에 비해 희귀한데다 발화점이 낮았기 때문이다. 쓰임새도 대장간의 보조 연료 정도에 그쳤다. ‘장님 석탄’ ‘돌 석탄’으로 천대받던 무연탄 수요의 증가는 펜실베이니아주의 발전을 이끌었다. 새로 뚫린 운하와 철도를 통해 한창때는 연간 4,000만톤의 무연탄이 실려나갔다. 무연탄의 재발견으로 가장 덕 본 곳은 바로 우리다. 탄광의 대부분이 목탄과 갈탄ㆍ역청탄 등 유연탄 지대인 다른 나라들과 달리 매장량의 100%가 무연탄인 지질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구한말인 1896년 외세(러시아)에 의해 개발되기 시작한 무연탄은 일제 자원수탈의 대표 품목이었지만 한겨울 온 국민을 추위로부터 지켜낸 일등공신이다. 석탄은 21세기의 주에너지가 될지도 모른다. 20~30년이면 고갈된다는 석유와 달리 땅 속에는 150년 이상 사용 가능한 석탄이 묻혀 있다. 각국이 탄광 개발과 공해 최소화, 불가능하게 여겼던 무연탄 액화기술 개발에 나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은 어떨까. 천하태평이다. 2005년 석탄 생산량은 283만톤.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시작된 1988년 2,429만톤의 11.6% 수준이다. 무연탄의 전략적 활용 구상도, 기술 개발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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