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세계의 사설] 한국 은행소유제한 완화 우려

은행에 대한 비(非) 금융기업의 지분 소유 제한을 완화하겠다는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의 제안은 많은 사람들을 우려케 한다.지분 소유 제한은 거대 그룹, 일명 재벌들이 은행들의 대출 결정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지난 1995년 4%로 제한됐다. 그 같은 조치는 불충분한 것으로 입증됐으며, 1997년 금융위기 이후 김대중 대통령은 재벌의 힘을 길들이기 위해 또 다른 개혁을 시행했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 개혁 조치의 상당수가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 갔다. 금융부문에 대한 재벌의 영향력 확대를 허용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은 그들을 투자 수익보다는 사업 확장 및 시장 점유율에 초점을 맞추는 과거의 경영방식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라는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지난 1996년까지 전체 매출의 97%를 차지했던 40대 재벌은 지나친 사업 확장으로 상당한 손실에 직면하게 됐다. 경기 침체는 그들을 더욱 깊은 적자의 수렁으로 내던졌고, 과도한 은행 대출로 인해 한국은 민간부분의 부채위기까지 맞게 됐다. 족벌경영 기업도 논란이 됐다. 그들은 낮은 수익을 위해 터무니없이 높은 리스크를 감수해 왔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정부는 은행들로 하여금 특정 기업가에게 대출을 해주도록 지시함은 물론 맹목적인 지급보증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정부가 대출의 최후 보루로써 봉사하기에는 부채 규모가 너무 커지자 국가 전체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 같은 대규모 모럴해저드를 만들어낸 시스템을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정부는 광범위한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대대적으로 은행의 국유화에 나서야 했다. 이제는 이 같은 국유화 은행을 어떻게 민간부분에 되돌려 주느냐, 그리고 시장원리에 따라 운용토록 하느냐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만일 유력한 지분 매입자인 재벌을 배제하면 자금줄도 많지 않은 상태다. 그것이 바로 재경부 장관이 소유 제한 완화를 시사한 이유다. 당초 소유 지분 완화 목표치는 1995년 이전과 같은 8%였지만 지난 3월 이후 10%가 유력시 되고 있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와 같은 수준이다. 이의 배경에는 형평성 논란도 작용했다. 그러나 문제는 만일 정부가 민영화 은행의 대출 결정에서 손을 떼더라도 아직까지 한국 경제를 좌우하는 재벌이 사금고로써 이들 은행을 이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한국의 개혁 성공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다. 한국기업 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는 기업이 투자 수익에 경영의 초점을 맞춤으로써 소득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만일 이것이 사라진다면 투자 자본은 한국을 떠날 것이다. 최근 증시에 투자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는, 즉 은행보다는 주식과 채권시장에 자금이 몰리는 상황은 가속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과거 재벌의 자본낭비 관행으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확실한 보장이 될 것이다. 재경부 장관이 어떤 정책을 채택하든지 간에 재벌의 사금고화라는 과거 시스템으로 시계를 되돌리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 6월 21일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