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회사정리절차(법정관리)를 인가할 때 기존 경영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DIP(Debtor in Possession)제도'에 대해서 부실기업주를 단죄하기를 원하는 국내기업 현실을 고려, 적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이는 DIP를 적용해 실제로 기존 경영인을 관리인으로 선임했던 법정관리업체에서 결국 관리인이 내부적인 불화를 이유로 사임함으로써 그 동안 지적돼 왔던 "부실경영인이 회사를 계속 경영할 수 있느냐"는 정당성 문제가 표면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기존경영인을 법정관리인으로 삼는다'는 통합도산법 안의 'DIP규정'에 대해 재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석달만에 관리인직 사임
법원은 지난 9월 의류제조업체인 ㈜천지산업의 법정관리인에 이 회사 대주주이자 전 대표이사인 김종영씨를 임명했다.
천지산업의 경우는 DIP제도의 도입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기존 경영자가 관리인으로 선임된 첫 사례로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김씨는 관리인 선임된 지 석달만에 사임하고 말았다. 사임에 대해 김씨는 일신상의 이유를 내세웠지만 부실의 책임이 있는 기존경영자가 계속 회사를 꾸려나가는 데 대한 내ㆍ외부의 반발에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천지산업은 공동관리인으로 선임됐던 임재근씨가 단독으로 꾸려나가고 있다.
◇"DIP제도를 원칙으로 강제하는 것은 무리"
현재 제정논의 중인 통합도산법은 법정관리인을 선임할 경우, 기존 경영자 중에서 선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도록 했다.
이는 기업으로 하여금 법정관리의 조기신청을 유도하고 기업회생에 기존 경영자의 경영노하우를 이용하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기존경영자를 법정관리인으로 선임한다는 조항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도 적지 않다.
서울지법 파산부 관계자는 "우선 부실책임에 대한 반발도 고려해야 한다"며 "DIP는 기존 회사정리법 상에서도 가능하지만 부실에 대한 책임이 없는 경영자를 찾기가 힘들어 적용하지를 못했다. 이를 원칙으로 강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낼 것이다"고 말했다.
◇DIP제도를 적용하는 기업은 늘어
서울지법은 천지산업에 이어 최근 법정관리에 들어간 인터넷 서비스업체 에이프로시스템㈜의 전 사장 조모씨를 관리인으로 선임했다.
이 회사는 직원이 5명인 미니 업체로 알려졌다. 앞으로 법원은 가능한 한 관리인 선임에 기존 경영자 출신을 늘려간다는 방침이다.
박주일 우리은행 강동기업영업본부 지점장은 "DIP제도에 찬성한다"면서도 "국내 기업부실의 대부분은 아직도 차입금 중심의 재무구조, 회계 및 경영의 불투명, 부실내용의 은폐 등 상당부분이 지배주주 내지 경영진의 문제에서 발생함으로 그 적용은 대단히 엄격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수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