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이동걸 금융연구원장

"금융제도 바꾸기보다 내부역량 키워야"<br>금산분리 폐지등 규제완화 선진국 추이따라 신중 접근<br>中企자본시장 개척하는 한국형IB '실버만삭스' 필요<br>G20등에 주도적 참여, 세계경기회복에 충분한 역할을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제 금융감독 및 금융시장의 새 판 짜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섣불리 국내 금융감독의 틀이나 제도를 바꾸기보다는 신중하게 접근해 금융사의 내부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이동걸(55ㆍ사진) 금융연구원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 서브프라임 사태로 미국 등 선진국들이 금융감독 시스템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는 만큼 한국도 이런 국제적인 동향을 충분히 살펴가며 금산분리 폐지나 자본시장통합법, 지주사 규제완화 문제 등을 풀어나가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원장은 또 “이제 금융 유동성 문제라는 전초전이 끝나고 급강하하고 있는 실물경기를 연착륙시키고 더 나아가 회복시켜야 하는 버거운 본게임에 들어갔다”며 “세계경기 침체에서 비롯된 국내경기 하강의 문제인 만큼 G20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세계경기 회복에 충분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의 초점이 금융시장 불안에서 실물경제 침체로 옮겨가고 있는데요. ▦국내외 금융불안은 각국 정부의 강력한 유동성 지원 등으로 진정되고 있지만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경기 침체, 이에 따른 국내경기 침체가 우려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경기회복 여부는 세계경기 침체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미국ㆍ유럽 등 선진국의 내년도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예상되고 중국도 수출이 줄어드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앞으로 2~3년간은 실물 침체가 예상됩니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원화 유동성 경색을 막아야 하고 경기를 소프트 랜딩시켜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실물경기를 살려야 하는 본질적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국내경기는 세계경제와 직결돼 있는 만큼 한국이 다른 국가들과 긴밀히 협조해 세계경기 침체에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가 관건입니다. G20에 적극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은 지난 10년간 주택대출이 늘어나면서 가계부채가 급증했습니다. 이제 이런 문제가 해소되는 과정에서 소비감소 등 상당한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미국 경제는 80%가 소비 부문에서 나오기 때문에 장기적인 경기침체가 예상됩니다.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할 것이 뻔한데 이렇게 되면 미국의 재정적자가 급증한다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정부가 금리인하ㆍ재정확대ㆍ감세 등 경기부양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는데 방향이 맞습니까. ▦경기를 연착륙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재정지출이냐 감세냐를 놓고 볼 때 경기부양 효과는 감세보다 재정지출 쪽이 높습니다. 감세는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 재정지출은 특정 그룹을 타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는 계급 또는 진보ㆍ보수 논쟁이 아닙니다. 경기침체기에 양극화를 막고 효과적으로 경기를 살리는 데 재정지출 확대가 효과적이라는 점은 역사를 통해 입증된 사실입니다. 건설경기가 좋지 않다고 돈을 풀고 있는데 이는 선별적으로 집행돼야 합니다. 건전하되 일시적 유동성 경색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기업은 도와줘야 하지만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 부실기업들은 이번 기회에 채권단(은행)이 솎아낼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합니다. -최근 자통법 시행 등 금융규제 완화에 상당한 우려를 표시하셨는데요.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선진국들은 건전성 및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금융감독의 새 판을 짜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경험이 많은 선진국의 추이를 봐가며 자통법, 금산분리, 지주사 규제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통법에 따라 투자 기능이 강한 증권사에 지급결제를 부여한 게 문제입니다. 지급결제 자산으로 투자를 하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지급결제에 문제가 생기면 금융 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루에만도 4,000만건의 지급결제가 이뤄지는데 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구제할 수밖에 없고 엄청난 비용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다른 금융업과 달리 은행에 엄격한 자본적정성 등의 기준을 부과하는 것도 지급결제 기능을 줬기 때문입니다. 증권사에 자산운용업을 허용한 것도 이해상충의 소지가 많습니다.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드러났듯 자통법식 기능별 규제로는 한계가 있고 기관별 규제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자산확대를 위해 중기대출에 열을 올리던 은행들이 경기침체로 정작 ‘중기 지원이 필요할 때 우산을 빼앗고 있다’는 비난도 많은데요. ▦중기가 경기침체로 어려울 때 은행권이 대출을 꺼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은행에만 책임을 묻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습니다.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 자금조달원 다양화 등 복합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난 정부부터 중기 경쟁력 강화를 외쳐왔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중기는 국내 부가가치의 80%를 담당하고 일자리의 90%를 차지하는 국내 성장 잠재력의 주축입니다. 중소기업들이 은행뿐 아니라 회사채 등 자본시장에서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중소기업들은 은행권에서 400조원의 대출을 받고 있지만 직접금융시장에서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직접금융이 700조원인데 600조원이 국공채, 100조원이 회사채이고 이 가운데 98%가 대기업 회사채입니다. 중소기업의 직접금융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셈입니다. -정부가 유동성 위기에 처한 은행에 급기야 외채 지급보증을 섰습니다. 은행이 그동안 무리한 자산확대 등 과당경쟁, 장단기 미스매칭 등 구태경영으로 일관해왔다는 비판이 많은데요. ▦늘 그렇듯 위기는 주기적으로 반복됩니다. 금융회사들은 평소에 자본확충 등으로 차분히 실력을 쌓은 후 위기(때)가 왔을 때 해외은행 인수 등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무리한 파생상품 투자를 한 씨티은행 등은 큰 위기에 직면했던 반면 원칙에 충실하며 내실을 다지면서 덩치를 불려왔던 HSBCㆍ산탄데르은행 등은 위기 때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국내 은행도 이를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미국 투자은행(IB)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국내 IB는 워낙 낙후한 만큼 적극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맞는 말입니다. 다만 리먼브러더스 등 미국 IB를 망하게 했던 자기자본투자(PI)는 위험한 만큼 상장, 인수합병 주선, 회사채 발행 등 수수료 업무를 키워나가야 합니다. 중국 등 특정 지역이나 정보기술(IT) 등에 특화하는 IB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 같은 딜을 처음부터 국제적으로 하기에는 힘드니까 국내에서 중기를 상대로 먼저 IB 업무를 익히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국제적으로 딜을 하는 골드만삭스형 IB의 전 단계로 같은 부분을 국내에서 하는 ‘실버만삭스’형 IB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기는 현재 자금조달 측면에서 자본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열악하기 때문에 중기 자본시장을 개척하는 한국판 실버만삭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실버만삭스형 IB가 많이 나와 중기의 상장, 인수합병, 회사채 발행 업무에 나서면 중기 자금조달도 원활히 이뤄지면서 금융회사들도 경험을 쌓고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지금은 경제난국… 모두 힘모아야"
종부세 폐지논란 계층간 대립·분열 불러
불요불급한 것은 경제 재건후로 미뤄야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은 이론은 물론 실제 정책수립 경험을 갖춘 금융전문가로 꼽힌다. 이 원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개혁 성향의 인사다. 이 원장은 당시 대기업 경영투명성 강화를 위해 증권 집단소송제 도입을 주도하는 등 재벌개혁에 주력했다. 이 원장은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계열사 간 투명ㆍ공정거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현정부에서 추진하는 금산분리 완화 등 금융규제 완화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소신을 밝히면서도 자신의 주장이 계급 논쟁이나 진보 대 보수 간 대결로 비쳐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은 금융위기에다 경제난국을 맞은 만큼 진보ㆍ보수를 떠나 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이유에서다. 이 원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에다 전세계적인 실물경기 침체로 한국경제호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정부와 기업ㆍ가계 등 모든 경제주체가 뜻을 함께 해 험난한 파고를 헤쳐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난국에서는 무엇보다 위기극복을 위해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가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정을 이끌어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의 종부세 폐지 추진 방침은 참과 그릇을 떠나 계층 간 대립과 분열을 야기한다"며 "당장 급한 것은 경제 재건인 만큼 불요불급한 것은 나중으로 미룰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원장은 "정부의 은행과 건설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도 차제에 국가 경제체질 강화를 위해 채권단을 통해 부실한 회사는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위기상황에서는 정부와 금융회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상 기업을 선별해 구조조정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약력 ▦1953년 경북 안동 ▦1973년 서울대 경제학과 ▦1994년 미 예일대 금융경제학박사 ▦1998년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1999년 한국개발연구원 금융팀 연구위원 ▦2002년 한국금융연구원 은행팀장 ▦2002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 제1분과위원회 위원 ▦2003년 금감위 부위원장 ▦2003년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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