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세금인가 벌금인가

주차위반시 부과하는 벌금에 대해 미국의 한 경제학 교수가 재미있는 분석을 한 적이 있다. 시에서 벌금을 정할 때 낮게 매기는 것을 피하지만 너무 높게 하면 위반자가 적어져 수입이 줄기 때문에, 사람들이 위반의 유혹에 빠질 수 있도록 적당한 선으로 정한다는 것이다. 주차질서확립이나 교통소통이 목적이 아니라 재정수입의 극대화가 바로 목적이자 기준이라는 것이다. 담배에 붙는 세금이나 부담금도 재정수입을 위한 것이다. 술과 함께 담배는 어느 나라에서나 중요한 수입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찍이 전매청을 만들어 직접 수입을 창출했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국가재정을 지키는 애국자라는 농담도 있었다. 그 후 지방세가 되자 담배소비가 내 고장을 돕는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적자가 나던 건강보험재정이 담배 부담금 덕분에 흑자로 돌아서기도 했다. 사실 우리만큼 철저하게 담배로 수입을 거둬들이는 나라도 드물다. 담배소비세, 지방교육세, 부가가치세, 건강증진부담금, 폐기물부담금, 엽연초 생산지원기금 등 무려 6 가지의 세금과 부담금이 붙여진다. 정부가 담배에 대한 부담금을 올리려고 한다. 그런데 그 목적이 수입 때문이 아니라 담배가 국민건강에 해로운 것이기 때문에 피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말하자면 벌금인 셈이다. 금지적세금(prohibitive tax)이라는 것도 있으니 담배라고 붙이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양담배 피운다고 실형을 내린 적도 있는데, 흡연율 60%가 넘는 망국적인 담배를 줄이기 위해 벌금을 매기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목적이 금연을 위한 것이라면 지금까지 해온 재정수입충당 정책과는 명백히 구별되는 제도적 틀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 담배 값 책정의 목적과 기준은 담배소비의 축소이다. 둘째 재정수입은 더 이상 정책의 우선 순위가 아니다. 셋째 현재 담배에 의존하고 있는 지출의 재원은 따로 마련한다. 이상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한 번 시도해 봄직하다 먼저 담배 값을 정하는 기준을 보자. 그 동안의 경험으로는 값을 올려도 담배소비는 거의 줄지 않았다. 정부가 이번에는 50%를 올릴 계획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가격인상으로 뚜렷한 소비축소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금연을 주장하는 쪽에서도 마찬가지 시각이다. 그러므로 2~3 배 이상이 될 때까지 대폭적인 인상을 계속해야 하는 데, 국민적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만약 앞으로의 논의과정과 국회결정에서 내용이 희석된다면(그럴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실효성은 물론 명분도 없는 담배값 인상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수입에 관한 문제다. 국민건강을 위해서라는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담배값 인상의 본 뜻이 수입확대에 있다고 생각한다. 초보적인 경제이론에 비춰봐도 소비억제보다 수입확대효과가 훨씬 크다. 재경부는 가격탄력성이 거의 없다고 했는데 이 말은 값을 인상해도 소비는 줄지 않고 수입만 는다는 얘기다. 복지부 계산대로 해도 50% 가격인상에 소비는 10%만 줄게 되는데 수지맞는 장사가 아닐 수 없다. 한 술 더 떠 4조의 추가수입을 예상하고 서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정말로 금연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전제로 해야 옳다. 마지막으로 재원보전 문제다. 지금까지 담배는 지방세 수입의 10 %를 포함해 5조원에 달하는 중앙과 지방 정부의 수입원 역할을 했다. 정부가 국민건강에 해로운 담배를 못 피우게 하려하면 담배에 의존했던 수입을 대체하기 위한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 담배로부터 돈을 더 거둬 저소득층을 돕는데 쓰겠다는 복지부의 계획은 정반대의 방향이다. 재경부가 생각하는 방안 즉 현재의 비율대로 인상 분을 나누자는 주장에도 맹점은 있다. 바로 그 점이 어떠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담배값 인상이 또 다른 재정수입 확대 조치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연이라는 정책의 목표에 맞게 현재의 담배에 대한 6 가지의 세금과 부담금 체계를 단순화해야 한다. 감사원에서 지적 받은 건강증진기금이 정비대상에 포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진정으로 세금에서 벌금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면, 이에 걸맞는 내용을 갖춰야 한다. 은근히 수입을 더 기대하는 벌금이 되어서는 안 된다. ■ 알립니다. 이달부터 현정택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부 교수가 이희범 서울산업대학교 총장의 뒤를 이어 송현칼럼을 집필합니다. 현 교수는 OECD공사, 여성부 차관, 대통령 비서실 경제수석을 역임한 경제관료 출신의 학자입니다. ◇현 교수 약력 ▲49년 경북 예천 출생 ▲67년 서울 경복고 ▲71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ㆍ행정고시 (10회)합격 ▲80년 매사추세츠대학 경영학 석사 ▲83년 경제기획원 정책2과장 ▲95년 재정경제원 국제협력관 ▲96년 재경원 대외경제국장 ▲97년 OECD주재 대표부 경제공사 ▲01년 여성부 차관 ▲02년 청와대 경제수석 ▲03년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현정택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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