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경제신문이 IB전문가 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절반에 가까운 15명(42.9%)은 국내 증권사가 글로벌IB로 발돋움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IB업무에 대한 규제완화'를 꼽았다. 이어 '자기자본 규모 확대(20%)' '글로벌 전문인력 수급(14.3%)' '증권과 은행의 협업(8.6%)' 등의 순이었다.
전문가들은 구체적으로 지난 4월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IB의 신용공여 한도가 기존에 논의돼온 자기자본의 300% 수준에서 100%로 줄어든 것을 아쉬워했다. 이 같은 제한으로 국내 IB는 결국 3조원가량의 자기자본만으로 IB업무를 해야 한다. 이는 자기자본이 80조원 규모에 달하는 글로벌IB와 경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신용공여 한도 축소는 증권사가 기업대출 업무 초기에 과도한 자금집행으로 부실해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이로 인해 증권사는 신용공여를 하면서 영업용순자산비율(NCR)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맞춰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은 더 줄어든다.
금융감독 당국이 증권사들에 제시한 NCR 가이드라인은 150% 수준이다. NCR는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과 같은 것이다.
정영채 우리투자증권 IB사업부 대표는 "NCR 수준을 유지하다 보면 그나마 활용할 수 있는 자기자본이 더 줄어들어 글로벌IB와의 경쟁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며 "신용공여 한도를 늘리든 NCR비율을 조정하든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이 전면 금지되는 것도 큰 문제다. 현재까지 대부분의 기업은 채권(bond)과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인 워런트(warrant)를 따로 떼어내 팔 수 있는 분리형 BW를 발행했다. 하지만 워런트만 따로 거래하면 기업이 경영권을 편법 승계할 수 있다는 이유로 다음달 말 나오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분리형 BW를 전면 금지할 예정이다. 증권사들은 이번 조치로 BW 발행이 급감해 관련 수익이 크게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분리형 BW 발행을 금지하면 시장 하나가 없어지는 셈"이라며 "지금도 시장이 어려워 수익이 급감하고 있는데 분리형 BW 발행 금지로 사업환경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융당국이 주가연계증권(ELS) 등 투자상품에 대해 증권투자자가 50명 이상일 경우 증권신고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것도 증권사들에는 부담이 된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장은 줄어들고 업무부담만 늘고 있다"며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오히려 IB영역이 줄어든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IB 전문가들은 한국 IB가 글로벌 IB로 성장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응답자 가운데 13명(37.1%)이 5~10년은 지나야 글로벌 IB가 나올 것으로 전망했으며 13명은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답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 설문 응답자 가운데 32명(90%)이 외국계 증권사들의 IB능력이 국내 증권사보다 뛰어난 것으로 평가해 사실상 국제무대에서 국내 IB의 경쟁력이 뒤떨어짐을 인정했다.
국내 IB시장의 전망에 대해서도 '매물소진에 따른 시장규모 축소'가 21명(60%)으로 가장 많았으며 '전년과 비슷한 수준 유지' 12명(34.4%), '매년 소폭 성장' 1명(2.8%), '기타' 1명(2.8%)으로 조사됐다.
내년 국내 IB업계의 최대 이슈를 묻는 질문에는 '업황 부진에 따른 대기업 구조조정 본격화' 23명(65.7%), '국내 기업 해외 M&A 증가' 5명(14.3%), '회사채 발행시장 성장' 3명(8.6%), '코넥스시장 개설에 따른 Pre-IPO시장 성장' 4명(11.4%) 등으로 집계됐다.
이번 설문조사에 응한 증권사의 한 IB 전문가는 "한국형 글로벌 IB를 육성하기 위한 자기자본과 해외 네트워크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다양한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과 함께 대형 IB 탄생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