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흑자 중요성 저평가 안타까워"<br>글로벌시대 걸맞은 '열린사고' 절실<br>"무역적자땐 또 IMF 초래 할수도"<br>'평생직장' 보다는 '평생직업' 찾을때
| 이희범 무역協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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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순 SK네트웍스 철강무역 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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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이 한국 경제의 활로라면 무역인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다. 30여년의 공직생활을 무역입국에 바친 경제단체장과 21세기 ‘장보고’를 꿈꾸는 30대의 상사맨. 그들은 같은 세계에 발을 딛고 있지만 또 분명 다른 세대를 살아왔다. 하지만 무역인으로 그들은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들은 세대를 뛰어넘어 무역의 가치를 대담 내내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종합상사의 변신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한 이희범 무역협회 회장과 국내 최고 무역회사에서 발로 뛰며 세계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박형순 SK네트웍스 철강무역팀장. 본지의 창간특별대담 그 두 번째는 무역한국을 위해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는 신구(新舊)세대의 만남이다.
▦박 팀장=우리 사회에는 세대간에 다양한 의견차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갈등이 있을 수 있고 조화도 있을 수 있는데 세대의 차이가 건전한 발전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요.
▦이 회장=방금 전 프랭클린 라빈 미 상무차관을 만났어요. 라빈 차관이 한국의 386세대가 유명하다며 관심을 보이더군요. 미국에도 386이 있다더군요. 아들과 세대차이를 느끼는데 대화가 쉽지 않다고 하면서. 세대간 격차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나도 애들이 20~30대인데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기도 해요.
▦박 팀장=회장님께서는 그런 격차가 왜 생겼다고 보세요.
▦이 회장=지금 젊은 세대는 밥까지 굶어야 했던 어려운 시절이 있었던 것을 몰라요. 우리는 원래 잘 사는 나라, 풍요한 나라라고 생각해요. 이어령 교수께서 앞으로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융합된 디지로그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하던데 저도 동의합니다. 디지로그 시대가 자리를 잡으려면 세대간에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날로그 세대라고 영원히 아날로그로만 사는 것도 아니고 디지털 세대도 디지털 문화만으로는 살 수 없거든요.
▦박 팀장=말씀을 들으니 무역과 세대차이 문제가 전혀 별개는 아닌 것 같네요. 디지털 시대를 맞아 국가 전체의 정보화 수준이 올라가고 있는데 무역이라는 것 자체가 세계화를 받아들여 세대간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신세대들에게 무역은 과거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 회장=요즘 들어 무역의 중요성이 저평가되는 것 같아요. 꼭 젊은 세대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무역이 한국 경제에 왜 중요한지 예를 하나 들게요. 지난 96년과 2004년 경제지표를 비교해봅시다. 2004년 대신 2005년을 대입해도 되구요. 96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7%에 달하고 실업률은 2%에 불과했어요. 경제 펀더멘털이 좋다는 얘기가 계속 나왔습니다. 지표 중 딱 한 줄 안 좋은 것은 무역적자가 200억달러를 넘었다는 것이었죠. 반면 카드사태로 신용불량자가 늘어나고 소비가 침체됐던 2004년에 경제가 좋았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래도 이때 무역흑자는 200억달러를 넘었습니다. 96년의 무역적자가 결국 97년 외환위기의 원인이 됐으나 2004년 무역흑자는 4대 외환보유국으로 만들었지요.
▦박 팀장=새삼 무역의 중요성이 와 닿네요.
▦이 회장=무역을 통해 쌓은 달러의 위력은 분명합니다. 달러가 없으면 경제 신탁통치를 받을 수도 있어요. 지난해 에너지 수입액이 667억달러에 달하고 1,000만명가량이 해외에 나갔는데 수출해서 흑자를 못 냈다면 어떻게 됐겠어요. 무역이 없었다면 세계 11위 경제대국도 없고 외환위기 극복도 못 했을 겁니다. 결국 중남미 국가들과 비슷한 처지가 됐을 거예요.
▦박 팀장=92년 입사해서 무역 쪽 일만 계속 했습니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경쟁력이 없으면 도태되고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점입니다. 기술력이나 내수가 탄탄하지 않으면 무역 자체로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또 고급제품은 계속 수출해가고 있지만 중저가 제품이 우리나라로 밀려 들어오는 것을 보면 국내 시장, 해외 시장 다 놓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이 회장=(웃으며) 박 팀장도 디지털 세대지만 마음속에는 아날로그 문화가 남아 있는 것 같네요. ‘수출은 더 좋은 거고 수입은 수출보다 덜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수입이 늘고 공장이 해외로 나가는 것, 맞아요. 불안한 일입니다. 하지만 국가간 무역이라도 부부처럼 오가는 정이 있어야 해요. 우리 제품만 팔고 사지는 않겠다고 하면 안돼요.
▦박 팀장=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래도 걱정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습니다.
▦이 회장=임금 수준이 높아지면 소득 수준이 높아집니다. 그러면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만들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요. 구조조정을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새로운 산업을 찾아야 하니까 고민이 계속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런 선순환이 없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은 젊은 세대의 몫입니다.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를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분명 선배들한테서 과거보다 나은 삶을 물려받았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물려줄 거냐, 똑같은 내일 아니면 퇴보된 내일을 물려줄 거냐는 지금 젊은 세대에게 달려 있어요.
▦박 팀장=기성세대에 대한 비판이 여론 몰이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은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과거 세대에 대해 비판하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사회가 점점 개인화하면서 신세대ㆍX세대ㆍN세대ㆍP세대 등이 명멸했습니다. 제가 세대차이에서 불안한 점은 인식의 격차보다는 정보의 격차입니다. 정보습득 능력에 차이가 확대되면서 세대차이를 부채질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회장=21세기 디지털 시대는 승자가 독식하는 사회입니다. 2등, 3등을 해도 예전에는 살았지만 디지털시대에는 1등만이 살아남죠. 마이크로소프트(MS)가 좋은 예입니다. 정보격차를 줄이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참외ㆍ키위를 재배하는 농가가 인터넷을 잘 이용해서 이득을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박 팀장=무역 얘기를 하다 보니 최근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회장=한미 FTA에 대한 비판이 많아지고 있는데 건전한 비판은 민주사회에 약이 돼요. 비판은 협상을 위해서도 바람직해요. 정부에만 협상하라 하고 나 몰라라 하면 안되죠. 정부에 요구한 것들이 잘 안되면 저도 비판할 겁니다. 그러나 비판도 절차의 민주성을 따라야 해요. 특히 사실에 근거해야죠.
▦박 팀장=FTA에 대해서는 각계각층의 입장차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FTA의 필요성,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이 회장=다자간 무역협상은 DDA 협상에서 보듯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도 9년이 걸렸어요. FTA가 지선(至善)은 아니지만 글로벌 추세이고 이를 따라가지 않으면 우리가 낙오됩니다. FTA 하면 무슨 문제가 생기는지 잘 압니다. 그런데 FTA를 안 하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잘 몰라요. 멕시코가 일본하고 FTA를 체결한 후 타이어 관세를 인상해 일본은 수출이 급증한 반면 우리 수출은 중단됐어요. FTA는 최선의 선택은 아닐지라도 생존을 위한 선택입니다.
▦박 팀장=FTA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동감합니다. 제가 베트남 지사장으로 근무할 때 아세안(ASEAN) 시장을 공략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발 빠르게 정치적으로 동맹을 강화하면서 준(準) FTA를 한 것 같고 중국은 국력이 크니까 또 아세안 시장에서 헤쳐나갔습니다. FTA가 안되면 경쟁에서 뒤떨어지겠다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 회장=그나저나 요즘 상사원으로 일하는 것, 어때요. 내가 70년대 초 상공부 사무관 시절 종합상사 제도를 육성한 사람 중 한 명인데 그때 무역만 전담할 인력이나 조직이 없어서 종합상사를 만들었어요. 70~80년대 상사원은 1등 신랑감이었는데.
▦박 팀장=제가 입사한 90년대 초만 해도 인기가 좋았죠. 해외에서 정보의 접근성도 종합상사만이 가진 장점이었습니다. 전설 같은 이야기들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까 왜 그런 식으로밖에 하지 못 했을까 하는 아쉬운 점도 눈에 띄었어요. 학습비용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적잖은 손실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회장=종합상사의 위상이나 역할이 과거와 많이 달라져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는 점은 이해해요. 그래도 종합상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몫이 많이 있다고 봐요. 여전히 기술과 특허가 있는데 정보가 없고 해외 네트워크가 없어서 수출 못하는 기업들이 많아요. 해외 자원개발도 그렇고 돈이 많이 들어서 선뜻 하려는 기업이 없는데 상사는 큰 자본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금융노하우가 있지 않습니까.
▦박 팀장=자원개발은 종합상사의 현지화 전략과 맞물려 좋은 사업 아이템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기업이 해외에 나갈 때 같이 투자도 하고 현지 유통망도 국내 수준처럼 만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회사의 경우 중국을 내수시장으로 보고 주유소 등 국내 유통ㆍ서비스 사업을 적극 진출시키고 있습니다. 상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정부도 많이 도와줬으면 합니다. (이 부분에서 무역업계의 신구(新舊)세대가 대우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이 회장=실정법을 어긴 데 대한 단죄는 불가피하죠. 하지만 대우는 무역에 대한 관념을 바꾸면서 기여를 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무역 분야 인적 네트워크를 굉장히 강화해줬습니다. 대우의 인적 네트워크를 와해시키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그게 지켜져서 대우인터내셔널ㆍ대우건설 등이 지금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습니다. 지하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인적 자원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됩니다.
▦박 팀장=대우 사태는 무역을 하는 사람에게 큰 아픔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대우 사태는 매출 지상주의를 끝내는 계기가 됐고 또 이후 많은 혁신활동의 출발점이 됐다고 봅니다. 회장님 말씀대로 ‘인적 자원의 소중함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라는 교훈을 남긴 것도 사실이구요.
▦이 회장=사회문제로 돌아가죠. 저출산 문제가 이슈 같아요. 젊은 세대가 결혼도 잘 안하고 애도 안 낳으려고 하잖아요. 젊은 세대는 과거 세대에게 애국을 강조하면서도 왜 자기들은 하려고 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이기적이죠.
▦박 팀장=인정합니다. 하지만 과거와 달라진 문제가 있는데 맞벌이가 보편화되면서 육아문제의 어려움이 오히려 가중됐습니다. 우리 사회는 육아의 모든 짐이 당사자들, 특히 엄마인 여성에게 쏠려 출산율 저하를 가속화시켰다고 봅니다.
▦이 회장=맞벌이나 사회적 뒷받침이 부족하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생각해요. 뒷골목에서 포장마차를 하면서도 50대, 60대는 자녀 2~3명을 거뜬히 키웠습니다. 일 때문에 못 낳는다고 하면 그 자체가 사치 아닙니까.
▦박 팀장=직장에서 여성들이 아이를 낳으면 회사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심리적 공감대가 있어요. 그런데 탁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우리 사회의 교육열이 지나칠 정도지만 현실적으로는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를 낳고 제대로 교육하는 일이 큰 부담이 된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저출산 못지않게 사회적인 화두가 실업문제인 것 같습니다. 사오정을 넘어 이구백(이십대 90%가 백수),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 걱정)이라는 신조어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회장=73년 상공부 사무관으로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디뎠어요. 33년이나 흘렀네요. 행복한 시간이었고 지금도 일할 수 있어 기뻐요. 젊은이들 실업문제를 생각하면 인생 선배로서 미안하기도 합니다. 나이를 떠나 일할 준비와 의욕이 있는 사람들이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점에서 국가적인 손해죠. 저는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강조하고 싶어요. 평생직장은 이제 평생직업이라는 개념으로 전환돼야 해요. 인생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이에 맞춰서 준비를 하다 보면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갖게 될 것이고 이렇게 갖게 된 직업은 나와 일체가 돼 분리되지 않습니다.
▦박 팀장=국민소득이 높아지면 노력 정도에 따라 성공할 기회와 여건이 더욱 좋아지겠죠. 3만달러 시대에 진입하려면 가장 필요한 게 뭘까요.
▦이 회장=정치ㆍ경제ㆍ문화 등 모든 패러다임이 선진국형으로 바뀌어야 해요. 글로벌 스탠더드를 도입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해요. 또 성장잠재력을 키우고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도 필수조건이라고 봐요. 그러려면 규제를 풀어 기업환경을 개선해야죠. 기업들도 과감한 투자를 통해 세계적 선도기업으로 발전해나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균형발전과 상생이 필요하구요.
● 이희범 회장은
산자부 장관때 '방폐장 터' 타결
30년의 공직생활, 한국생산성본부회장, 한국산업대 총장을 거쳐 제8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이희범(57) 무역협회 회장. 이 회장은 별도의 수식어가 없어도 이름 석자만으로 한국 산업계를 대표하는 명사다. 이 회장은 강한 카리스마로 군림하지 않지만 한국인의 특성인 '은근과 끈기' 가남다른 승부사이다. 19년동안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표류해온 방폐장 터 선정을 이 회장이 장관 시절 이끌어낸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부안 사태를 겪으며 또 물 건너 가는 줄 알았던 방폐장 터 선정, 수출2,000억달러 돌파, 교역 5,000억달러 시대를 연 것도 이 회장의 은근과 끈기가 없었다면 쉽사리 이루지 못할 일이었다는 게 주변의 공통된 평가다. 고향 안동에서 소문난 수재로 불렸지만 이 회장은 일처리를 치밀하게 할 뿐 천재성을 뽐내지 않는다.옆집 아저씨처럼 소탈한 이 회장의 유일한 멋내기는 이발소에서 '머리 정리하기' . 한결같은 그의 헤어스타일에서 이발소 간 날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지만 이를 몰라주면 무척 서운해 한다.
● 박형순 팀장은
철강만 15년 담당 '베테랑 상사맨'
이희범 무역협회장에 비하면 그 경력이 "달빛 아래 반딧불에 불과하다" 고 겸손해 하는 박형순(38) SK네트웍스 철강무역팀장. 하지만 박 팀장은 어느새 15년차 베테랑 상사맨으로 SK네트웍스와 한국 종합상사의 미래를 짊어진 차세대 무역 일꾼이다.
92년 연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체면이라도 걸린 듯 종합상사로 이끌렸다. 무역에 일생(一生)을 걸기로 했지만 박 팀장은 그의 명함에서 엿볼 수 있듯 철강 전문가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의 미탈스틸이 2위인 유럽연합(EU)의 아르셀로를 인수합병(M&A)한 뉴스의 깊숙한 과정까지 그는 꿰고 있었다. 그에게도 아픔이 없을 리 없다.
99년부터 베트남 지사에서 근무했던 박 팀장은 2003년 2월 SK글로벌 사태를 맞았다. 자신의 몸처럼 느끼던 사업부문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고개를 떨구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그 해 9월 베트남 지사장으로 임명된 박 팀장은 전열을 재정비해 아세안(ASEAN) 시장 공략에 나섰다. 그는 "위기 속에서 수십년간 뿌려온 선배들의 땀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 했다.
3년이 채 안돼 내수와 해외사업의 균형을 맞추며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한 SK네트웍스를 보며 기자가 박 팀장에게 "일등공신 중 한 명" 이라고 추켜세우자 "괜한 포장은 하지 말라" 고 부탁했다. 대신 그는 이런 바람을 전했다. "맨손으로 묵묵히 땀을 쏟으며 회사를 일으켜 낸 선배들이 조금이라도 더 조명 받기를…"
● 대담 뒷얘기
저출산 등 우리사회 미래걱정 '한목소리'
장관을 역임한 경제 단체장과 그리고 그 절반도 되지 않는, 하지만 그 사이 환란의 상처를 겪으면서 현장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30대의 기업체 부장. 이들의 만남은 세대차의 간극을 줄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젊은 샐러리맨으로서는 세상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노련한 경제단체장과 말을 섞는 것 자체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한시간을 조금 넘긴 다소 짧은 시간. 대화가 진행되면서 둘 사이에서는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젊은 샐러리맨은 작정이라도 한 듯이 현장의 경험들을 거침없이 쏟아냈고, 노련한 회장은 30년, 아니 40~50년의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대한민국 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상황을 세부적인 수치들까지 들이 대면서 읊어 나갔다.
뜻밖에도 대화는 이희범 회장이 젊은 세대에 대한 공격을 가하면서 시작됐다. "젊은 사람들은 기아와 전쟁이라는 것이 뭔지, 그리고 성장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몰라요." 그리고는 10여년 전의 수치들까지 읊으며 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해 나갔고, 과거 산업자원부에 몸담던 시절 종합상사를 만들었던 추억을 떠올렸다. 박형순 부장도 가만 있지 않았다. "젊지만 마음 속은 아날로그입니다. 무엇보다 무역에 대해서는 고민을 많이 합니다."
날카로운 공격들이 오갔고 긴장감이 몰려 왔다. 하지만 이내 동질감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무역' 과 '국가 경제에 대한 사명감' 이라는 동료 의식이 잠재해 있었다. 직업을 떠나 세상사에 대한 삶의 문제에서도 두 사람은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은 문제 의식을 드러냈다. 저출산 문제에 들어가자 이 회장이 직설적으로 발언을 꺼냈다. "딸이 결혼한지 3년이 지났는데도 애를 나으려 하지 않아요. 왜 젊은이들은 국가관을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너무나 짧은 시간, 두 사람에게는 아주 많은 대화의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그래서일까. 이 회장은 끝나는 자리에서 젊은 박 부장에게 "언제 소주 한 잔 하자" 며 어깨를 두드리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