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기초과학연구원 설립에 부쳐


어떤 특정한 사람을 위해 관청이나 공공기관에 자리를 마련한다는 위인설관(爲人設官)은 낙하산 인사와 함께 좋지 않은 인사 방식이다. 그렇지만 요즘 과학 비즈니스벨트와 함께 한창 논의가 진행 중인 기초과학연구원의 연구단장들은 위인설관식으로 구해야 한다. 작년에 설립 80주년을 맞이한 미국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소는 이론연구만 하는 곳으로서 지난 80년 동안 노벨과학상 20여개와 수학의 노벨상이라 일컬어지는 필즈메달 30여개를 받았다. 미국 대공황으로 어렵던 시절 미래의 꿈을 심기 위해 한 부유한 남매가 프린스턴 대학교보다 더 많은 자산을 기부해 고등연구소가 세워졌고 첫 교수로 아인슈타인 박사를 모셔왔다. 특정한 목적만 쫓아선 안돼 이후로도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리는 폰노이만 등 기라성 같은 기초과학자들을 거느렸다. 고등연구소는 특정 연구분야를 정해 놓고 이를 연구할 사람을 구한 것이 아니라 뛰어난 학자가 있으면 그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주는 바로 위인설관식 방법으로 교수 자리들을 채웠다. 1996년에 설립돼 어려운 외환위기 역경을 극복한 후 우리나라 미래의 선물을 자처하는 고등과학원도 수월성을 유지하기 위해 위인설관식 방법으로 교수와 연구원을 구하고 있다. 개인의 이론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프린스턴고등연구소나 우리 고등과학원과 달리 과학비즈니스벨트에 들어갈 기초과학연구원은 각 연구단장이 수십명의 연구원들을 거느린 연구단 50개 가량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방식의 연구소로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와 일본의 이화학연구소가 있다. 이들 연구소가 연구단장을 구하는 방법도 위인설관식이다. 어느 특정 분야를 연구하기 위해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학자를 연구단장으로 모시고 그에게 최대한 학문적 자유와 함께 행정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수많은 뛰어난 과학적 성취를 이룰 뿐 아니라 인재도 키워내고 노벨상과 같은 영예도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위인설관은 창의성을 생명으로 하는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상대성이론을 찾아내라는 주문을 받아서 아인슈타인이 연구한 것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이 연구하다 보니 상대성이론이 나왔듯이, 백남준도 비디오아트를 하라는 주문을 받아서 한 것이 아니라 백남준이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것이다. 흔히 과학과 기술, 연구와 개발이 대비되고 중간에 다양한 구분이 가능하겠지만 기초과학연구원의 설립목적은 과학 쪽으로의 극단, 연구 쪽으로의 극단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 특정한 제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목표와 목적을 정해 놓고 이를 수행할 사람을 구하게 된다. 이미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유용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기술개발인 데에 비해 기초과학연구는 특정한 목적에 이용하기 위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탐구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낸다. 기초과학연구원의 설립목적은 바로 이 목적을 초월한 초목적적 연구라 할 수 있다. 위인설관식 인재 영입 필요 따라서 어떠한 목적을 정해놓고 이를 수행할 사람을 구할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해 놓고 그 사람에게 연구를 맡겨야 한다. 정밀레이저분광학에 대한 기여로 200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테오도르 핸슈 교수는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단장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수상식에서 행한 강연 중 재미있는 그림을 보여주었다. 어미 닭은 울타리에 목이 걸려 바로 울타리 밖에 있는 모이를 보고도 쪼지 못하고 있는데 병아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아예 울타리 밖에 나와 있다. 목적지향적 개발식 연구의 한계를 보여주면서 호기심으로 하는 초목적적 연구의 가능성이 무한함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었다. 우리나라는 1970~80년대 목적지향적인 연구로 산업화에 성공했다. 이제 미래를 향한 더 큰 도약을 위해 초목적적 기초과학연구원 설립에 위인설관식으로 뛰어난 인재를 영입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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