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스웨덴 모델 타령은 그만


2007년 스웨덴ㆍ핀란드 등 북유럽 지역을 취재할 때였다.

혁신 경제의 대명사였던 핀란드의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핀란드 양대 산학연 클러스터인 오타니에미(Otaniemi) 사이언스 파크를 방문했다. 클러스터 마케팅 담당 최고경영자(CEO)는 인터뷰가 끝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필두로 정부관료ㆍ국회ㆍ대기업 등을 포함해 불과 2년 사이에 한국팀이 무려 350여 차례나 방문했다고 푸념했다.


이처럼 한국사회에 한때 북유럽 모델 열풍이 분 적이 있다. 참여정부가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구하는 '비전 2030'을 내놓으며 북유럽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으면서부터다. '비전 2030'성장과 복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는 측면에서 유혹적이었지만 사회 갈등만 부추기고 말 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박근혜ㆍ오바마 정부도 벤치마킹

이 같은 북유럽 모델, 특히 그중에서도 대표 주자인 스웨덴 모델이 지난해 대선을 거치며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국내에서는 분배 욕구가 커지며 반기업 정서가 기승을 부리는데 스웨덴은 대기업 주도의 성장전략으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를 만들어냈다니 매력적이지 않을 리 없다. 특히 북유럽 국가들은 최근 유럽 재정위기 와중에서도 정부지출을 줄이고 교육ㆍ의료 등에 경쟁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성장률과 복지국가의 근간을 동시에 지켜냈다.

사정이 이러니 '자본주의의 새로운 모델(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2월2일자)'라는 얘기가 나올 만도 하다. 박근혜 정부는 물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복지정책도 스웨덴 모델의 모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스웨덴 모델에 배울 점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국내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우리나라 정치권이나 노사가 스웨덴 모델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본 뒤 편 가르기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탓이다. 스웨덴 모델은 기본적으로 성장을 극대화한 뒤 그 과실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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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노사 간 타협, 노동시장 유연화, 낮은 법인세, 규제 완화, 오너의 소유권 인정 등 친기업적인 정책 등을 통해 대기업 위주의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탈락한 노동자에게는 기본적인 복지를 보장하고 재교육ㆍ보육 등 인적투자나 공공자본 확충을 통해 사회 복귀를 돕고 있다.

스웨덴 모델은 '자본의 천국'이자 '(노동이 아닌)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양면성을 가지는 얘기다. 이 같은 이율배반적인 요소 가운데 우리는 정치적으로 필요한 부문만 주목해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 사용하고 실질적인 정책 진전은 뒷전인 상황이다.

가령 우리나라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스웨덴처럼 '동일 노동-동일 임금'원칙을 적용해 비정규직에게 양보하라고 하면 들은 척이라도 하겠는가. 또 국내 대기업 오너들에게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처럼 기업 지배권만 가진 채 경영에서 손을 떼라고 하면 과연 어떻게 될까.

북유럽 '사우나 대화 문화'부터 배워야

그런 의미에서 이제 스웨덴 모델 타령은 그만 했으면 한다. 어차피 경제발전 경로나 사회 문화도 다른데 '보기에 좋은 떡'이라고 아전인수식으로 겉모습만 베껴서 어디에다 쓰겠다는 말인가.

정작 북유럽 모델에서 배워야 할 점은 대화와 타협의 문화다. 스웨덴ㆍ핀란드 등은 100년 역사의 복지 모델을 자신의 처지에 맞게 끊임없이 수정ㆍ발전시켜왔다. 가령 핀란드의 경우 정당 간, 노사 간 갈등이 커질 때마다 특유의 사우나 문화로 위기를 돌파했다. 지금도 핀란드는 공개적인 토론 장소보다는 건물마다 있는 사우나에 반나체 차림으로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공감대를 도출하고 있다.

한국형 복지체계를 구축하는 작업도 성장이냐 분배냐를 운운하기에 앞서 정치력 복원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처럼 사회 각 부문이 귀를 막고 충돌만 일삼다가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좌초될 게 뻔하다. 이는 정치 노선을 떠나 한국 경제에 불행한 일이다.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 합의를 계기로 여야가 찜질방이라도 들어가 정치권 대화복원에 시동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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