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콜금리 인하'의 성공함수

조영훈 금융부 차장

한국은행이 오랜만에 뉴스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무려 13개월 동안이나 동결됐던 콜금리가 전격적으로 인하된 것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서 나온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로 채권과 주식시장이 동반 상승하는 이례적인 현상도 나타났다. 그만큼 이번 금리 인하가 가져올 효과에 대한 시장의 기대도 커지고 있음을 뜻한다. 콜금리 인하는 그동안 우리 경제에 대해 조심스런 낙관론을 피력했던 정부 당국이 경기침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본격적인 ‘경기 부양’으로 선회했음을 알리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선택과 집중에 의한 부문별 감세정책을 택하겠다”고 밝혀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을 펼칠 뜻을 내비쳤다. 정부가 최근의 경제상황을 위기로 인식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위기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적절한 처방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경기부양정책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먼저 금리 인하로 인해 굳게 닫힌 소비자의 ‘지갑’이 열릴지 의문이다. 은행권이 콜금리 인하 이후 연이어 수신금리 인하를 발표하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가 직접 부담하는 대출금리를 낮추는 것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 이번 금리 인하의 최대 수혜업종으로 ‘은행’을 지목하는 분석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데 대부분이 예대마진 확대를 그 이유로 꼽는 것도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막상 소비자가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은 크게 늘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금리 인하가 자칫 ‘유동성 함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걱정되는 부분이다. 유동성 함정은 케인즈가 제기한 학설로 금리를 한계수준까지 낮추고 통화량을 늘려도 소비와 투자심리가 살아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 1920년대 세계 대공황과 90년대 일본의 장기불황이 여기에 해당된다. 만약 콜금리를 인하했음에도 연말까지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유동성 함정 우려감은 현실로 다가와 더 큰 위기를 부를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비도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국제유가 50달러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데다 국제원자재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지 오래다. 물가부담이 큰 상황에서 금리 인하정책은 일정 부분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것이다. 경제는 ‘심리’다. 금리 인하를 앞세운 정부의 경기부양 대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가계부터 기업ㆍ금융기관까지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데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투자에 나설 것이고 금융기관도 경기회복에 필요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다. 국민들도 “이제 경기가 조금 나아지는 듯하니 돈을 써도 되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본은 10년 장기불황에 따른 소비침체를 타계하기 위해 국민들에게 ‘상품권’을 직접 지원하는 부양책을 사용했고 2000년 프랑스 정부는 소비회복의 수단으로 국민차 보급정책을 펼치면서 차량가액의 일정액을 직접 지원하는 보조금정책을 펼쳤다. 그 실효성을 떠나서 정부의 의지를 보여줬던 대표적인 사례인 셈이다.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유류에 부과되는 고율의 특별소비세를 낮출 수도 있고 법인세 부담을 줄여주는 감세정책에 대해 다시 논의해볼 수도 있다. 균형재정을 추구하는 정책 당국자의 입장에서 세수가 줄어드는 정책을 선택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경기상황이 위기국면이라고 인식한다면 ‘적자재정’을 통해 경제를 회복한 후 부족한 세금을 메우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금리 인하가 ‘깜짝 쇼’로 끝나지 않으려면 금융정책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강도 높은 재정정책을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의 금리 인하 ‘베팅’으로도 경제를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