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Culture&Life] 소리꾼 이자람

"국악 대중화요? 내가 즐길수 있는 일 하는 것 뿐이죠"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연산의 연인 녹수 역을 맡은 이자람(앞에서 두번째)이 폐비 윤씨를 위한 제의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예솔이'로 동요 부르던 아이, 판소리 만나 운명처럼 빠져

또래와는 동떨어진 음악에 한때 정체성 고민도 수차례


춘향가 부르든 투애니원 꽂히든 '그 자체가 나' 깨달으면서

동시대 문화서 창작의 힘 얻어

연극·작창·노래… 몸은 힘들지만 내 안의 뜨거움 잃지 않았으면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도 참 많다. 소리꾼, 밴드 보컬, 음악감독, 작창가, 배우…. 서른여섯 젊은이에게 이토록 많은 직업(?)을 안겨준 건 다름 아닌 판소리. 어린 시절 TV 출연을 위해 일로 배운 '어색하기만 했던 음악'은 그러나 곧 소녀의 마음을 열었고 20년 넘게 그의 삶과 함께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춘향가·적벽가) 이수자이자 심청가 최연소(18세) 완창 기네스북 등재 등 국악인으로서 굵직한 활동은 기본이요, 연극과 뮤지컬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하며 판소리를 변주하는 소리꾼 이자람. 어떤 호칭이 가장 듣기 좋으냐는 질문에 그는 고민할 것도 없이 '작업자'라고 답했다. "작업자라는 표현이 가장 공평한 것 같아요. 제가 노래를 하든 작창을 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작업을 하고 있잖아요. 다른 호칭은 저를 특정 장르에 가두는 것 같아서 부담스럽고요." 자신만의 확고한 심지로 (본인은 부담스럽다며 고사하는 표현이지만) 국악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팔방미인 '작업자' 이자람을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났다.

◇뜨거운 작업자, 뜨거운 연극쟁이와 만나다=이자람은 최근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연산의 연인 녹수와 연산의 어미 폐비 윤씨의 혼령 1인 2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배우 외에도 작품의 음악감독·작창을 맡았으니 역할로만 치면 1인 3~4역을 소화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뮤지컬 '서편제'에서 주인공 송화 역을 맡아 그해 더 뮤지컬 어워즈 여우주연상을 받은 그녀지만 정통 연극 주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배우 이자람을 캐스팅한 건 이 작품을 하기 전에는 별 인연이 없었던 이윤택 연출이다. "선생님께서 제가 루마니아 공연에서 극작가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원작으로 만든 사천가와 억척가로 기립 박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건네 들으셨대요. '기립을 받은 배우면 검증이 필요 없다'며 캐스팅을 해주셨죠." 그는 이윤택과의 작업이 자신에겐 '큰 복'이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 자체로 뜨거운 예술가예요. 늘 자기 자신과 싸우는 모습을 볼 땐 때론 연민이, 때론 존경심이 생기죠. '저 사람이 원하는 걸 해 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없어요."

◇판소리, 그 운명 같은 만남=판소리는 이자람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다. 그 음악과의 첫 만남은 우연인 듯 다가와 운명처럼 이자람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원래 노래를 좋아하던 아이였다. 다섯 살 때는 '예솔이'라는 가명으로 아빠 이규대(포크 듀오 바블껌 멤버)와 함께 창작동요를 발표해 인기를 끌기도 했다. 동요 부르던 예솔이가 판소리하는 자람이로 변신한 건 열한 살 때다. "한 방송국 TV 프로그램에서 '판소리 오프닝'을 맡으며 국악과 연을 맺었어요. 그때 제게 소리를 가르쳐주러 오신 분이 2000년 타계한 은희진 명창이셨죠. 일 때문에 잠깐 배우려던 것인데 운명처럼 빠져들게 된 거죠." 국립국악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음대에 입학할 때까지 은 명창은 이자람과 함께했다. 이자람은 이후 스승의 스승인 고(故) 오정숙 명창, 인간문화재 송순섭 명창으로부터 사사하며 국악인의 길을 계속 걸어오고 있다.

◇투애니원에 꽂힌 국악인…동시대 문화에서 창작의 힘 얻어=한국인조차 외면하는 음악. 외로운 길을 걸어오는 동안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한번은 사천가를 함께한 남인우 연출께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선생님, 기타 매고 홍대 클럽에 드나드는 이자람도 나고, 명창 스승님께 소리 수업을 받으러 가는 이자람도 나인데 내 삶의 이 괴리는 과연 무엇일까요?'" 서태지·듀스· H.O.T…. 또래 친구들이 열광하던 '핫'한 노래와는 동떨어진 음악, 그 길을 열한 살 어린 나이부터 걸어온 그에게 언제고 한번은 찾아올 고민이었다. "내가 하는 판소리는 왜 이렇게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는가도 궁금했고 친구들과는 다른 무엇에 열중하고 있다는 데서 외로움도 느꼈죠. 그런데 남 선생님이 해준 한마디 덕에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당시 남 연출이 대학생 이자람에게 건넨 한마디는 짧지만 모든 답을 담고 있었다. "그 자체가 너란다." 춘향가와 적벽가를 부르든, 노래방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필승'을 열창하든, 둘 사이에서 고민하든 그 주체는 이자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제 인생에 큰 변화를 준 한마디였어요. '그 자체가 나'라는 사실을 인정한 뒤부터는 자유롭게 모든 작업을 대할 수 있었죠." 지금도 투애니원의 음악에 꽂혀 있다는 그는 "소리를 공부하면서도 동시대 문화에 열광했던 것이 사천가와 억척가를 낳은 내 작업의 자양분"이라고 말했다.


◇국악의 대중화? 즐기는 게 먼저=특정 형식에 구속되지 않아서일까. 이자람은 그동안 영역을 넘나들며 자신의 끼를 발산해왔다. 판소리에 브레히트를 접목하는가 하면 '아마도 이자람 밴드'를 결성해 판소리와는 또 다른 '포크록' 보컬로서 색다른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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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람이 다양한 활동으로 국악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정작 본인은 이런 이야기에 손사래를 친다. 이자람은 "국악의 대중화보다는 나와 내 친구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며 "내 작업에서 굳이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국악의 대중화는 열 번째 정도"라고 웃어 보였다. 그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예로 들었다. "싸이가 즐기며 놀다가 강남스타일을 만들었고 그것이 전세계로 퍼졌잖아요. 그런데 이후 많은 음악이 세계 시장을 겨냥해 강남스타일 같은 노래를 만들었죠. 순서가 잘못된 거라는 이야기예요." 자기 자신과 그 주변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가. 이게 바로 이자람이 생각하는 국악의 대중화다. "어떤 분들은 제가 해외 유명 극작가의 작품으로 판소리극을 하는 것을 두고 '이자람이 해외에 잘 팔려 나갈 만한 물건만 만드는구나'라고 하세요.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다양한 이야기로 연극 하는 모든 분들이 해외에 가겠다는 목적으로 무대를 준비하던가요? 전 그저 여러 작업 중 저를 즐겁고 뜨겁게 만드는 일을 찾는 것뿐이에요."

다양한 활동 탓에 혹자는 이자람을 퓨전 국악인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자람은 "전통 판소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직도 명창 스승에게 수업을 받고 있고 올해 말에는 흥보가 완창을 앞두고 있다. 활동 범위를 넓히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그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판소리고 그 속에 동시대의 이야기를 담아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게 내 역할"이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장르를 만났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내 안의 뜨거운 온도 지켜가고파"=이자람의 1년 일정은 이미 꽉 차 있다. 1월 '문제적 인간 연산' 제안을 받은 뒤 2~3월 미리 음악 작업을 마무리했고 판소리 단편선 '이방인의 노래' 공연 및 공연 준비로 4·5월을 보낸 뒤 바로 연극 연습에 합류했다. 문제적 인간 연산 공연 휴무였던 지난 7일 오랜만에 얻은 휴가에 15시간을 몰아 잤을 정도라니 말 다했다. 이달 말 연극이 끝나면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 8월 오키나와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이후 연말까지는 억척가 지방 투어를 할 예정이다. "억척가는 신체적으로 정말 힘든 작품이에요. 지금 이 포맷으로는 제게 이 노래를 부를 시간이 많지 않은 거죠. 늦기 전에 국내 지방 관객을 찾아다니며 공연을 선보일 계획입니다." 이토록 하루하루 하얗게 불태우고 있건만 '내 안의 뜨거운 온도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게 이 욕심 많은 젊은이의 바람이다. 마음 가는 이야기를 일단 선택한 뒤 작업 과정에서 '내가 왜 이야기와 함께하는가'를 집요하게 추궁한다는 이자람은 "작품을 선택하는 본능, 그리고 그 선택의 이유를 찾으려는 뜨거운 열망이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때론 실망하는 관객이 있을지언정 '내 취향이 아니어도 돈 아깝지는 않다'는 소리를 듣는 공연을 계속 하고 싶다"고 밝혔다. 작은 체구에서 솟구치는 폭발적인 에너지와 그 안에 켜켜이 쌓인 뚜렷한 소신. 이게 바로 어떤 수식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작업자 이자람의 뜨거운 온도요 매력이다.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 은

연산 인간적 고뇌 조명… 굿·판소리 형식으로 이윤택 연출색 드러내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은 피 토하며 죽은 생모를 그리다 복수와 광기로 치달은 사람, 역사가 '악명 높은 폭군'으로 기억하는 조선의 10대 국왕 연산군을 무대로 불러낸다.

이윤택 연출이 대본도 직접 쓴 이 작품은 1995년 초연 당시 유인촌·이혜영이 각각 연산과 녹수로 열연해 각종 연극상을 휩쓸며 화제를 모았다. 이번 공연은 2003년 재공연 이후 무려 12년 만에 다시 관객을 만나는 자리다. 극 중 연산은 서슬 퍼런 왕권으로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제의를 시작하고 녹수는 윤씨의 혼을 입는다. 녹수의 입을 통해 폐비와 연산에게 해를 가하려 했던 인물들이 하나둘 밝혀지고 궁궐에는 피바람이 몰아친다.

연극은 역사 속 인물 앞에 붙은 수식어와 '선악' '옳고 그름'의 역사적 평가를 떼어내고 알몸으로서의 인간 자체에 조명을 들이댄다. 연산의 인간적 고뇌를 중심으로 그가 폭군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작품에 녹아 있는 '굿'의 형식과 묘한 에너지의 판소리는 연극을 또 하나의 굿으로 만든다. 작·연출가인 이윤택은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보여왔듯 폐비 윤씨를 위한 굿과 접신 등 샤머니즘적인 소재를 이용해 독특한 무대 색깔을 빚어냈다. 이자람이 선보이는 애절한 노래와 현대무용을 연상케 하는 연산의 격정적인 안무가 한데 어우러지며 애달픔과 분노·광기를 형상화한다.

울창한 대숲을 배경으로 낡아 쓰러진 대들보와 초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선 용상을 통해 작품의 우울한 분위기도 한껏 끌어올린다. 7월26일까지 명동예술극장.



She is…



△1979년 서울 △국립국악중·고교 △서울대 국악과 △서울대 대학원 국악과 △1997년 전주대사습놀이 학생부 장원 △1999년 최연소 춘향가 완창(8시간) 기네스북 △2004년 전주대사습놀이 일반부 장원 △2010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 △2010년 Festival KONTAKT In Torun(Poland) 최고여배우상 △2012년 홍진기 창조인상 문화부문 △2014년 더뮤지컬 어워즈 여우주연상(뮤지컬 서편제) △2015년 동아연극상 새개념연극상 부문(판소리 단편선1 주요섭 - 추물, 살인)

◇주요 작품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 연극 '당통의 죽음', 판소리 단편선 1-'추물, 살인', 판소리 단편선 2-'이방인의 노래', 판소리극 '억척가', 판소리극 '사천가', 뮤지컬 '서편제' 외 다수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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