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체방크가 미국 내 자산을 대폭 삭감하기로 했다. 외국계 은행에 대한 미국 금융당국의 규제를 피하기 위한 조치다. 이번에 새롭게 도입된 규제안을 놓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유럽계 은행은 물론 유럽 당국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도이체방크의 이번 조치가 불러올 후폭풍에 관심이 집중된다.
2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도이체방크는 미국법인 자산 가운데 4분1가량인 1,000억달러(약 107조4,700억원)을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환매조건부채권(레포·Repo) 사업이 주된 감축 대상이며 일부 자산은 유럽·아시아 사업부로 편입된다.
도이체방크의 이 같은 결정은 지난 18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새롭게 도입한 '외국계 은행조직 규정(FBO)'에 따른 후속조치다.
이 방안에 따르면 미국 내 500억달러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외국계 은행의 경우 오는 2016년 7월까지 미국 내 중간지주사를 설립하도록 하고 자본·유동성·레버리지 규정을 미국 은행과 똑같은 수준으로 적용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미국 내 외국계 은행들은 총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을 최소 4% 이상 유지해야 하는데 도이체방크는 자기자본을 늘리는 대신 총자산을 줄이는 방안을 선택한 것이다.
연준의 규제방안이 적용되는 외국계 은행은 15~20곳가량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도이체방크를 비롯해 크레디트스위스(CS)·바클레이스 등은 이번 규제로 노출된 자산규모가 미국 내 전체 자산의 20% 이상에 이르는 등 유럽계 은행을 중심으로 사업축소 우려가 높다. 이에 따라 도이체방크의 이번 조치가 다른 유럽계 은행들의 향후 행보에 연쇄반응을 초래할 수 있다고 FT는 보도했다.
이와 함께 영국의 경제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의 규제방안을 둘러싼 독일·프랑스·스위스 당국의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며 "단순히 자본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협조 체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미셸 바르니에 EU 집행위원은 지난주 연준의 새 규제방안이 발표된 직후 "우리는 이 같은 차별적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