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전기전자ㆍ자동차ㆍ철강ㆍ화학ㆍ통신 등 6개 업종의 국내외 대표기업 경영성과를 분석한 결과 우리 기업의 부채비율이 외국에 비해 현저히 낮고 유동비율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낮은 부채비율과 높은 유동비율은 재무건전성과 내실경영 정착이란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벌어들인 돈을 투자보다는 주로 빚을 갚는데 쓰거나 그냥 회사에 쌓아둔다는 것이란 점에서 반길 수만은 없는 현상이다.
GMㆍ도요타ㆍIBM 등 비교대상 18개 외국기업의 지난해 부채비율은 182.3% 였다. 삼성전자ㆍ현대차ㆍ포스코 등 18개 국내기업은 그 절반인 99.5%였다. 유동부채에 대한 현금 등 유동자산 비율인 유동비율은 우리기업이 124.2%로 외국기업의 99.7%보다 높았다. 설비투자시 타인자본 의존비율은 우리가 외국보다 낮았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현금사정이 넉넉한데도 투자에 소극적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투자소홀은 고용사정을 나쁘게 만들고 성장잠재력 약화를 가져온다. 당장은 그럭저럭 외국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힘이 부칠게 뻔하다.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면 국가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장담하기 어려워진다.
투자부진은 기업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데다 그마저도 규제와 정책 불확실성 등이 발목을 잡고있기 때문이다. 불투명한 경기상황으로 리스크가 커지면서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을 찾는데 애를 먹고있다. 여기다 각종 규제가 아예 투자심리를 더욱 냉각시키고 있다.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으나 사정은 좋아지지 않고 있다. 규제완화가 변죽만 울리기 때문이다. 수도권규제 등은 별로 달라진 게 없고 순환출자금지, 이중대표소송제, 아파트 원가공개 등 오히려 더 부담을 주는 조치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정책 당국자들은 투자부진의 이유로 ‘기업가정신’의 실종을 꼽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도전정신이 충만했던 창업세대들과 달리 지금 기업인들은 쉬운 길을 가려는 경향이 짙다. 그럴수록 정부는 기업을 탓하기 앞서 그들이 뛸 수 있는 여건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시장원리의 존중과 규제 개혁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