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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업정서 확산이 브레이크가 없는 전동차 같습니다."
최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과 만난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경제민주화 열풍에 대해 이처럼 우려를 표시하면서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과감한 투자를 이끌어야 할 재계 오너 등 총수들은 사정의 칼날이 자신을 겨냥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정치권 등의 눈치 살피기에 급급한 것이 요즘의 실상이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정치권이 앞다퉈 추진하고 있는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들이 투자 보류 및 축소, 보수적 경영 등으로 이어지면서 실질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며 기업가정신지수의 추락은 이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포퓰리즘에 입각한 과도한 경제민주화 움직임이 기업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따라서 앞으로 무리한 경제민주화 입법에 제동을 걸고 기업인의 사기를 높여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에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제민주화 정책에 투자심리 위축 불가피=서울경제신문과 현대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국내 주요 기업들은 현재 경제민주화 논의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응답기업의 79.2%는 '경제민주화의 취지에는 동의하나 현재의 논의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답했으며 '기업의 활동을 위축시키므로 경제민주화 정책 추진을 재고해야 한다'는 응답도 11.1%를 차지했다. 반면 '경제체질 개선과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므로 현재와 같이 추진돼야 한다'는 응답은 9.7%에 불과했다.
기업들은 특히 경제민주화로 향후 기업의 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 창출 의욕이 감소될 것을 우려했다. 경제민주화 정책이 가져올 부정적 영향으로 가장 많은 36.1%의 기업이 '기업의 투자 및 일자리 창출 의욕 위축'을 꼽았다. 이어 기업들은 '국내 반기업정서 심화(27.8%)' '기업의 경쟁력과 수익성 저하(26.4%)' '국내 경제의 잠재성장률 저하(9.7%)' 등을 경제민주화 정책의 부정적 영향으로 들었다.
기업들은 또 경제민주화 정책 중 가장 부담이 되는 정책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34.6%)'와 '신규 순환출자 금지 및 지배구조 개편(25.4%)'을 꼽았다. 이어 '비정규직 차별 금지 및 근로시간 단축(16.9%)' '공정위 전속고발권 강화(13.8%)' '횡령ㆍ배임 등 경제범죄 처벌 강화(4.6%)' 등의 순이었다.
국회는 지난 2일 본회의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법안을 우선적으로 처리할 방침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가뜩이나 글로벌 경기와 내수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6월 국회에 이어 9월 국회에서도 기업들을 옥죄는 각종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무더기 처리될 것으로 예상돼 기업들로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하반기 투자, 상반기 수준 그칠 듯=올 하반기 주요 기업들의 투자규모는 상반기와 비슷한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 설비와 연구개발(R&D)을 포함한 전체 투자규모에 대해 '상반기 수준이 될 것'이라는 응답이 63.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반기 투자규모를 상반기 대비 '10% 미만 상향하겠다'고 응답한 기업은 16.4%, '20% 이내 상향'은 2.7%였다. 한편 '10% 이내 축소'는 9.6%, '20% 이내 축소'는 5.5%, '20% 이상 축소'는 2.7%로 각각 조사됐다.
하반기 투자규모를 상반기보다 늘릴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도 '그렇다'는 대답은 32.9%에 그친 반면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67.1%에 달해 기업 전반적으로 보수적 투자성향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이면에는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기업인들의 투자심리가 위축된 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재계는 9월 국회에서 논의될 신규 순환출자 금지가 시행될 경우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M&A)을 위한 증자시 대주주의 지분율 감소로 경영권이 위협 받을 수 있어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상당수 기업이 경제민주화 입법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에 눈치만 보면서 투자를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결국 과도한 규제로 인해 기업들이 국내 투자 대신 해외 투자로 눈을 돌리는 사례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