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중산층이 가난한 이유


지난달 초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발표한 후 엉뚱하게도 '중산층'이 이슈로 떠올랐다. 정부가 중산층 연봉을 1,800만~5,500만원으로 제시하면서 중산층이 단단히 화가 난 것이다. 정부 기준에 따른 중산층과 실제 느끼는 중산층의 괴리감 때문이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라 중산층을 정의한다. 이 기준으로는 4인 가구 기준 월 가처분소득이 177만~531만원이면 중산층이다. 177만원 정도가 중산층의 소득수준이라면 국민들이 화낼 만하다. 본 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월 가처분소득이 500만원은 돼야 중산층이라 생각한다. 자산 규모도 7억8,000만원은 돼야 중산층이라 생각하는데 정부 기준 중산층의 자산은 2억5,000만원에 불과하다. 이렇게 괴리가 크다 보니 중산층 기준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저소득층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무려 55%에 달했다. 몸은 중산층, 마음은 저소득층인 셈이다.

주거ㆍ교육비 부담에 자긍심 사라져


왜 괴리가 생기는 것일까. 괴리가 큰 집단의 특성을 살펴보면 답을 얻을 수 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 살림살이가 팍팍한 적자가구는 공식적으로 중산층임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자리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 즉 소득도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가구나 무주택자, 노후준비가 안된 경우도 자신을 저소득층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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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 사회는 대표적인 고비용 사회다. 정부가 복지로 감당해야 할 부분을 국민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공교육을 강화해서 교육비 부담을 덜어줘야 하는데, 한국의 중산층은 사교육비 부담에 허리가 휘어진다. 정부가 임대주택을 충분히 공급해서 주거비 부담을 줄여줘야 하는데, 요즘 중산층은 전세가격 폭등에 신음하고 있다. 집 쫓겨나기 싫어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산 하우스푸어는 빚 갚느라 소비지출을 줄이고 있다. 정부 공식 통계로는 올 상반기에 소비자물가가 1.3% 상승에 그쳤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물가는 5.4%에 달한다. 이처럼 지출할 수밖에 없는 품목이 많고 체감물가도 높다 보니 중산층 소득으로는 중산층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가 없다. 그래서 괴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산층재건 국정목표 재정립돼야

중산층은 경제와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으로서 중산층이 탄탄해야 사회갈등도 줄어들고 경제발전도 가능하다. 공식적인 중산층 대부분이 본인은 저소득층이라 생각할 만큼 살림살이가 팍팍하니 중산층의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경기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중산층 스스로 본인이 중산층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줘야만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더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드는 것이다. 나쁜 일자리 열 개보다는 좋은 일자리 한 개를 만드는 것이 중산층의 자긍심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공교육을 살려 사교육비를 줄이고 임대주택을 충분히 공급해 주거비 부담을 줄여야 하며 체감물가를 낮춰야 한다. 또한 교육을 통해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다시 올라갈 수 있도록 계층상승 사다리를 복원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핵심공약 제목이 '중산층 70% 재건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박근혜 정부 국정비전 및 국정목표'에서 중산층이란 단어가 사라져버렸고 취임 후 정부가 내놓은 국정과제 추진계획에서는 중산층이 저 귀퉁이로 밀려나버렸다. 다시 중산층을 살리겠다, 중산층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정부가 선언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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