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디지털 만능시대라 할 만큼 스마트폰, 아이패드 등 다양한 의사소통 수단이 발달하면서 덕분에 산골이나 심지어 화장실까지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24시간 소통이 가능하게 됐다. 특히 문자 메시지는 상대가 좋아하거나 말거나 실시간으로 일방적인 의사전달이 가능하니 참으로 막강한 소통 수단이라 하겠다.
그런데 나와 마주앉아 놀아주고는 있지만 쉴 새 없이 전화기 너머에 있는 누군가와 손가락이 안보이게 문자를 주고 받으며 내게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는 아들아이를 보면 벽과 마주한 느낌이 든다.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비비며 앉아 있기는 한데 서로 전화기로 문자 찍느라 바쁘거나 인터넷으로 무엇인가 열심히 하면서 정작 같이 있는 눈앞의 상대방은 안중에 없는 것 같다. 서로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불쾌해하지도 않는 것을 보면 차라리 코믹하기까지 하다.
내 차 앞으로 치일 듯 걸어가며 열심히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보행자. 급브레이크를 밟은 나는 가슴을 쓸어 내리건만, 자기가 치일 뻔 했다는 사실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저 사람은 딴 세상 사람인 것 같다. 내가 탄 택시기사가 한 손으로 운전하며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보면 운 좋은 주인공이 나오는 액션영화 그 자체다.
지금 여기, 나와 만나는 사람이 가장 잘 소통해야 하는 대상일 텐데도 몸 따로 생각 따로인 이 현실에서 진정한 소통이란 과연 무엇일까.
어젠가 본 특수효과(FX) 영화에서 몇 층으로 되어 있는 조작된 무의식의 층을 오가며 자신이 직면한 현 상황이 무의식 속 세계인지 현실인지를 구별하기 어렵고, 컴퓨터 게임을 즐기다 갑자기 실제 살인을 해보고 싶었다던 초등학생 사건. 이쯤 되면 자신과의 소통에도 문제가 생긴 셈인데 디지털과 현실의 경계는 어디쯤인지.
전세계와 접해있는 인터넷에서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파급되는 소통 프로그램에서 잠시라도 이탈하면 불안한 현대인이,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고 매트릭스 세계에서 현실로 빠져 나와 내 가족, 내 친구, 내 동료와 종이 신문, 종이 책을 두고 토론을 벌여 보거나 누렇게 바랜 사진첩을 돌려보며 내가 처해있는 바로 이 시간, 이 자리, 이 사람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충실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용기를 내보면 어떨까.
한 자녀 더 갖기 운동도 좋지만 있는 자녀 돌려받기도 해야 할 것 같다. 진정한 소통, 느리지만 확실한 소통을 회복하기 위해 하루 한 시간 휴대폰 끄기 운동을 한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