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어도 말을 아끼는 경우가 많다. 특히 주변 상황이 어려워지면 더욱 그렇다.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도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비판을 듣기 싫어 입을 닫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욕을 먹어도 꼭 하고 싶은 쓴소리가 두 가지 있다.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의 초석으로 삼는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과 ‘투자확대’와 관련된 것이다.
잡셰어링부터 시작하자. 발상 자체를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고용불안 해소를 통해 위기극복은 물론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취지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정부의 일자리 대책이 우리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 데 있다. 잡셰어링의 대부분이 인턴 등 임시직 채용에 그치고 그나마 중도 이탈이 많아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시직 채용 그쳐 실효성 미약
인력 채용은 기업에 따라, 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예를 들어보자. 산업은행ㆍ신용보증기금 등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요즘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경제위기 이후 계속된 이런 근무로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 있다. “사람이 부족하면 인턴들을 뽑으면 되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맡은 업무는 인턴들이 할 수 있는 단순한 업무가 아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공기업 선진화정책’에 막혀 정규 직원들을 뽑지 못한다. 얼마 전 이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한 장관과 공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총대를 메고 공기업 인력 충원을 건의했다가 핀잔만 들었다는 후문이다. 이후 어느 누구도 이 얘기를 꺼낼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이 정도면 분명히 뭔가 잘못이 있다는 것을 대통령이 알고 있을 법하다. 만약 모르고 있다면 상황인식을 잘못해도 너무 잘못하는 것이다. 혹시 “내 방식이 아니라 안 된다”는 아집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투자확대도 마찬가지다. “어려울 때 투자해야 과실이 많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따라서 지금 투자해야 한다는 데는 토를 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진리가 모든 분야에서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산업별ㆍ제품라이프사이클별로 다를 수도 있다. 통신산업의 예를 들어 보자. 정부는 현재 통신업계에 투자확대를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통신업계의 상황을 보면 정부가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타이밍이 아니다. 새로운 먹거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시설투자에 나설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시설투자를 하더라도 투자장비의 대부분이 외국산이라는 점도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만약 투자를 한다 해도 외국업체들만 배 불려줄 수밖에 없다.
돈 쓸수 있는 분위기 만들어야
통신업계가 당장 해야 할 것은 투자가 아니라 마케팅이다. 지금은 실물경기가 급속도로 가라앉고 있어 가진 사람이 돈을 써야 경제가 살 수 있다. 특히 기업들이 돈을 써야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업이 돈을 쓰는 방법은 크게 투자와 마케팅으로 나눌 수 있다. 투자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마케팅이라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투자만 늘리라”는 아집에 빠져 마케팅 하는 것조차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면 기업은 마케팅비용을 줄여버린다. 통신업계의 지난 1ㆍ4분기 실적이 경제위기 이전인 지난해 1ㆍ4분기보다 현격히 좋아진 것도 마케팅 비용을 쓰지 않은 것이 주요인이다.
경제는 심리다. 가진 자가 돈을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소비자들이 지갑을 연다. 투자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마케팅 등 다른 방법을 써도 될 터인데 굳이 고집을 부릴 필요가 있는가 싶다.
잡셰어링와 투자확대는 현 정부가 야심작으로 추진하는 분야여서 잘못된 점이 있어도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내놓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면 경우에 따라 신축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것도 어렵다면 솔직히 잘못을 시인하고 다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경제에 숨통이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