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10월 27일] 데자뷔

치솟는 금리와 잇따르는 계약포기ㆍ미분양, 다 지어놓고도 몇 달째 입주자가 없어 불 꺼진 새 아파트. 경매시장에서는 유찰을 거듭해 반토막난 값의 아파트들이 나오고, 전셋값마저 뚝 떨어져 집주인은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최근 부동산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다. 특히 요즘 부동산 거래시장에서는 비정상적인 일련의 현상들이 엿보인다. 일반적으로 집값이 안정될 때는 전셋값이 오르게 마련이다. 내 집 마련 수요자들의 유보심리로 전세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전셋값마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이른바 ‘역전세난’의 가능성까지 엿보인다. 주택 거래시장에서 ‘원가’ 개념도 사라지고 있다. ‘절대 손해보고는 팔지 않는다’는 매도자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지면서 산 가격보다 수천만원, 심지어는 수억원 낮은 가격에 손절매하려는 매도자들이 늘고 있다. 건설업계가 처한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들도 날이 지날수록 강도를 더해간다. ‘어려움’에서 ‘위기’로, 그리고 이제는 ‘부도’라는 단어조차 공공연하게 쓰인다. 그런데 이 같은 현상들은 언젠가 한번쯤 겪었던 일들이다. 프랑스어로 ‘데자뷰(dejà vu)’는 ‘이미 보았다’라는 의미다. 정확히 11년 전 늦가을에 느꼈던 공포와 혼돈을 요즘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현상을 둘러싼 배경도 비슷하다. 치솟는 금리, 급등하는 환율, 단순히 세상이 싫어서 자행되는 개인의 폭력들…. 한 중견 건설업체 사장은 요즘 새벽이면 문득 잠에서 깨 두려움에 떤다고 고백한다. 11년 전에도 느꼈던 두려움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11년 전 기억이 주는 데자뷰로 가장 큰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은 바로 서민과 중산층이다. 단순히 집값이 떨어지고 펀드에 저축한 돈이 반토막 났다는 사실보다 더 큰 고통이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정부와 전문가들의 말을 믿으면서 위안을 삼지만 쉽게 공포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은 11년 전에 대한 기억이 아직 너무 생생하기 때문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최근 집값 하락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은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객관적인 수급상황 못지않게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한몫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같은 심리적 요인이 원인이라면 해법 역시 거기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는 정부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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