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확산되는 동양 모럴해저드] 고객 도장 파서 계약서 날인… 입력된 비밀번호로 멋대로 투자

■ 피해자들이 전하는 동양증권 CP 불법영업 백태<br>"정기적금·국채와 비슷" 투자 위험성 설명 않고 "고금리 마지막 상품" 현혹<br>경영진은 인사 반영한다며 직원에 강압적 판매 지시


투자자 이모(35)씨는 지난 8월 동양증권 영업직원으로부터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 넣어둔 돈 일부가 동양그룹 계열사의 기업어음(CP)에 투자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전화를 해보니 CMA 이자가 얼마 되지 않아 고금리인 CP로 자금을 옮겨놓았다는 대답이 왔다. 평소 이 직원에게 일임을 한 것도 아니었다. 직원은 이씨가 바쁘니까 자신이 알아서 막도장을 파 계약서에 날인을 했다고 말했다. 동양 사태가 터지고 등기로 온 그 도장을 확인해보니 자신의 이름과는 다른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계약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추모(43)씨는 지난 10년간 동양증권과 거래를 했지만 이번 동양 사태가 자신에게까지 영향을 미칠지 몰랐다. 추씨는 2000년 CMA 붐이 일었을 때 남편과 함께 동양증권의 CMA를 통해서만 거래를 했기 때문이다. 추씨는 동양 사태가 이슈화되고 난 뒤 자신과 남편의 투자금 5,000만원이 동양그룹 계열사 CP에 투자돼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동양 사태가 있기 3~4개월 전부터 동양증권 영업직원이 불법 영업을 해왔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고객 모르게 CMA를 통해 자금을 빼낸 뒤 동양 CP에 투자한 사례도 있었고 고객 도장까지 직접 만들어 투자한 뒤 고객들에게 통보한 사례도 있었다. 이 같은 내용은 투자자와 영업직원 간 문자, CP 투자 계약서, CMA 거래 내역, 녹취록 등을 통해 확인됐다.

앞서 이씨를 통해 확인한 녹취 내용을 보면 불법 행동이 일상적이었다. 이씨가 피해자 동의도 없이 어떻게 거래가 가능하냐고 묻자 해당 영업직원은 "내가 계좌번호를 알잖아. 그리고 예전에 비밀번호를 물어봤기 때문에 한번 입력된 정보가 있어 다음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어"라고 말했다.

도장을 직접 만들어 업무처리를 한 데 대해서도 "원래는 안 되는 거지. 만기 때 아무 문제가 없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 서류를 나중에 받으려고 했는데 **(이씨 이름)가 바쁘니까 못나와서 어쩔 수 없었어"라고 답변했다.


경영진 쪽에서 강압적으로 동양 계열사 회사채와 CP를 판매하라고 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 직원은 "지점장이 솔직히 우리한테 강압적으로 했어. 사실 우리도 팔기 싫었어. 그룹 문제가 빤히 보이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안 하는 게 좋잖아. 그런데 인사고과에 반영한다고 말하고 앞으로는 7~8% 고금리 상품 안 나오니까 마지막 상품이라고 거짓말해서 사라고 말 한 거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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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피해자 추씨 역시 "바빠서 대부분 전화로 거래를 했는데 한번 비밀번호를 영업직원에게 알려준 게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며 "그 전까지는 고금리 상품이 나오면 안내해주고 투자해보라는 권유를 하고 내 동의를 받고 투자했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얘기도 없이 CP에 투자해버려 집 살 돈을 몽땅 날렸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어 "9월 초 영업직원에게 집을 사기 위해 가입한 상품에서 돈을 모두 빼겠다고 말하자 직원이 깜짝 놀라며 언론사에서 나온 동양그룹 유동성 위기는 믿을 내용이 아니라고 설명했다"며 "그래도 추석 후에는 돈을 찾을 생각이었는데 이런 일이 터졌다"고 덧붙였다.

영업직원이 동양 회사채가 고금리 상품이라며 빨리 가입하지 않으면 경쟁이 치열해 가입할 수 없다고 독촉한 경우도 있었다. 박모(59)씨는 이러한 권유에 네 가족이 학자금ㆍ결혼자금ㆍ노후자금을 위해 모은 3억5,000만원을 동양과 동양시멘트 회사채에 투자해 손해를 봤다. 박씨는 "영업직원은 동양 회사채가 정기적금과 비슷한 상품이고 국가에서 인증해준 국채와 비슷한 상품이기 때문에 손해 볼 이유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며 "동양256이라는 상품인 줄 알았지 채권이나 CP인 줄은 전혀 몰랐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영업지점에서 일한 바 있는 한 증권사 직원은 "장기간 거래를 해 신뢰관계가 있는 고객의 경우 본인확인 절차가 없이도 직원들이 마음만 먹으면 CMA 자금을 다른 쪽에 투자할 수 있다"면서도 "이런 경우 한 직원이 임의대로 할 수는 없고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조국환 금융감독원 금융투자검사국장은 "고객 모르게 고객 계좌를 유용한 경우는 임의매매에 해당해 금감원의 행정조치, 형사고발 대상이 되는 행위"라며 "피해 투자자들이 금감원 신고센터를 통해 연락한다면 이런 상황을 다 따져보고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강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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