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근면'이나 '성실'과 같은 우리 고유의 미덕은 더 이상 권장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여가'의 숨겨진 덕목을 홍보하기에 바쁘고 일ㆍ가정 양립이라는 그럴듯한 명분도 추가된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원 빈국에서 오늘날의 경제성장을 이끈 것은 기업가 정신과 더불어 유교문화에서 굳게 다져진 근면과 성실함이었다. 기술이나 설비가 마땅치 않으니 근로자의 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최근 근로시간 단축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나 정치권은 노사합의가 있더라도 평일과 휴일의 총근로시간을 현재 68시간에서 52시간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토ㆍ일요일 근무를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근로시간은 꾸준히 줄고 있지만 여전히 2,000시간을 상회해 선진국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고용의 절대다수를 책임지는 중소기업의 어려운 사정에 있다.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35%에 머무는 가운데 여전히 가격 경쟁력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비용절감의 압박 속에 설비투자나 추가고용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정부ㆍ정치권의 의지와 같이 휴일 근무마저도 제한된다면 생산차질은 물론 임금감소에 따른 노사갈등도 쉽게 예상된다. 더욱이 이런저런 규제로 사업 환경이 어려워진다면 생산기지의 외국이전도 탓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전후 사정이 이러한데도 개정법률안은 앞장서서 근로 대신 여가를 즐기라고 부추기니, 중소기업은 생존의 기로에서 앞날이 보이지 않고 경제전체에도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는 것 같아 불안하기만 하다.
근로자도 이를 반길 리 만무하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처럼 지갑이 두둑해야 풍경도 눈에 들어오고 매사에 인심이 솟는 법이다. 그러나 사교육비, 집값, 노후대책 불안은 근로자의 금전적인 선호를 매우 높여놓았다.
근로시간 단축이 현실화되면 현재 토ㆍ일요일에 근무를 하는 근로자는 약 20% 이상의 소득감소가 예상된다. 넉넉하지 못한 중소기업 근로자에게 임금감소를 감내하고 여가를 즐기라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근로시간 단축은 우리 경제와 산업계의 부정적 파급효과를 최소화하고 기업 현장의 수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 특히 2010년 6월 노사정이 오랜 논의와 산고 끝에 2020년까지 1,800시간대로 근로시간을 단축키로 합의한 만큼 정부와 정치권은 노사의 자율적 개선을 뒷받침해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