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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년 만에 말안장에 올랐다. 목적지인 모지(모자)오름이 아스라이 보였다. 목장 근처의 민가와 공사장을 벗어나니 들판이 나왔다. 시야가 확보되자 앞서가던 교관이 구보로 내닫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서 구보로 전환했다. 말이 콧김을 뿜었다. 네 발굽에서 경쾌한 4분의2박자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짐승의 가뿐 숨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어려서 배운 승마를 40여년이 넘게 지나 이렇게 요긴하게 써먹을 줄 몰랐다. 목적지인 모지오름까지는 왕복 15㎞. 말을 타고 2시간 거리다.
모지오름은 어머니가 아이를 껴안고 있는 형세를 닮았다고 해서 모자(母子)오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현지에서는 모지오름이라고 불린다. 표고는 305.8m로 웬만한 산의 높이며 오름 안에 분화구 바닥의 직경은 1㎞로 적지 않은 규모다.
모지오름이 가까워오자 삼나무숲이 시작됐다. 삼나무는 겨울을 잊은 듯 검푸른 침엽을 달고 20~30m 높이로 솟구쳐 있다. 도열한 삼나무 사이를 평보와 속보로 번갈아 걷다가 오름의 비탈이 시작되자 구보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에서는 구보를 해도 속도가 떨어지는데다 내리막길에 비해 미끄러질 가능성도 낮아 안전하기 때문이다.
탄력을 받아 달려나가는 중에 오솔길 오른쪽으로 가시덤불이 보였다. 왼쪽 고삐를 당겨서 방향을 바꾸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외투가 가시에 걸려 '찌직' 소리가 나더니 오리털이 눈처럼 날렸다.
"아! 내 점퍼."
오름 승마 취재가 졸지에 비용을 엄청나게 소비한 값비싼 취재가 되고 말았다.
말은 내 쓰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내달렸다. 어느새 오름 정상이다. 오름에 오르니 정상의 분화구 둘레는 온통 갈대밭이다. 갈대는 키가 높아 말의 머리까지 가릴 정도다. 갈대를 헤치고 200m쯤 전진하다 왼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푸른 하늘과 넓은 초원이 맞닿은 사이로 빨간지붕과 파란지붕을 이고 있는 집들이 점점이 찍혀 있다.
분화구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깥쪽에 삼나무숲이 있는 것처럼 안쪽에도 삼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말굽형 분화구 안에는 또 다른 알오름이 솟아 있다. 모지오름이라는 이름은 이 작은 알오름 때문에 붙은 것이고 그 모습이 어머니 품에 안긴 아기(알)오름의 형상이라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오름 능선의 정상부 주봉 일대는 에미(어미)동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제주의 맑은 바람을 한껏 들이마신 후에 말을 돌려 오름 아래로 향했다. 내리막길을 갈 때는 체중이 앞으로 쏠리기 때문에 몸을 뒤로 젖혀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
말은 포유류 중에서는 지능이 상당히 높은 편으로 특히 기억력이 뛰어나다. 이 동물은 안장 위에 앉은 사람이 자신의 동작에 따라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파악해 사람의 능력을 알아채고 잘 타는 사람인지 초보자인지를 귀신같이 알아챈다.
성질이 못된 말은 초보자를 만만히 보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거나 등 위에서 떨어뜨려 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제주마(조랑말)나 한라마(제주마와 서러브레드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는 안전한 편이다. 서러브레드는 겁이 많아 잘 놀라고 돌발적인 행동을 하지만 제주마나 그 피를 이어받은 한라마는 담대한 편이다. 게다가 체고도 낮다. 낮은 데서 떨어진다고 안 다친다는 보장은 없지만 체감하는 공포감은 훨씬 덜한 편이다.
덩치가 작아 폼이 안 난다는 점만 빼면 제주마와 한라마는 여러모로 우수한 종자다.
이 같은 여건을 바탕으로 제주관광공사와 제주대 승마산업육성사업단은 '로하스 마이스 승마 상품'을 개발, 보급에 나서고 있다. 로하스(LOHAS)란 '라이프스타일 오브 헬스 앤드 서스테이너빌리티(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의 약자로 '건강과 지속 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하며 마이스(MICE)는 회의(Meeting), 포상관광(Incentive travel), 컨벤션(Convention), 전시(Exhibition)의 약자로 국제회의와 전시회를 주축으로 한 유망 산업을 뜻한다.
이와 관련, 오창현 제주관광공사 융복합사업단장은 "로하스 마이스 승마 상품은 '건강'과 '힐링'에 초점을 맞춰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나 회의, 전시, 인센티브 투어 등으로 제주를 찾는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승마체험을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그는 "단순한 스포츠로서의 '승마'가 아니라 말이 가지고 있는 따스함과 말을 탄 사람과의 교감 등 말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육체적 치유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기존의 승마 상품과는 차별화된다"고 덧붙였다.
■승마 트래킹을 즐길 수 있는 곳
◇제주승마공원
제주승마공원에는 승마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초보자도 15분 정도 교육을 받으면 가이드와 함께 외승 승마에 나설 수 있는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야간 승마 외에 낮에도 초보자가 즐길 수 있는 숲길 승마가 있다. (064)799-9540
◇OK승마장
승마 고급자나 단체 외승 승마 추천 프로그램으로는 화산섬 제주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오름승마가 있다. OK승마장에서는 말을 타고 모지오름을 오르는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064)787-3066
◇조랑말체험공원
말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싶다면 가시리 조랑말체험공원을 들러볼 만하다. 문화예술 복합공간인 조랑말체험공원에는 제주도 말 문화와 역사는 물론 말 콘텐츠에 관한 풍부한 자료가 준비돼 있다.
이 밖에 로하스 마이스 승마 상품의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말과 함께하는 힐링' '말타멍 귤따멍' '말과 함께하는 곶자왈' '승마 피크닉'과 2박3일 일정의 '말타멍 힐링캠프' '말 타고 삼다도라' 등 인센티브 단체에 최적화된 프로그램 등이 있다. 유앤아이 (064)805-9888, 제주팡투어 (064)721-7840
벌판서 말 탈 때는 천천히 걷는 평보
시속 15㎞내 속보로
말의 걸음걸이는 속도에 따라 평보·속보·구보로 구분된다.
승마장 내에서 교관이 지켜보고 있는 중에는 평보·속보·구보 중 어떤 발걸음을 해도 좋으나 승마장 밖으로 나가 벌판에서 말을 탈 때는 가급적 평보와 속보로 천천히 이동하는 것이 안전하다. 승마도 역시 안전수칙을 지킬 때 안전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말의 걸음은 크게 4가지로 구분되는데 가장 느린 평보는 네 다리가 각각 한 발씩 차례로 땅에 착지하는 4절도 보법으로 1분에 100m 정도를 간다.
속보는 2절도 보법으로 좌속보와 경속보가 있는데 좌속보는 안장에 눌러앉아 말의 반동을 체중으로 받아내는 방식이고 경속보는 반동에 맞춰 등자를 밟으며 엉덩이를 들어주는 기승법이다. 속보는 시속 15㎞ 안팎의 빠르기다.
구보는 3절도의 발걸음으로 엉덩이를 안장에 밀착시키고 허리를 밀어준다는 생각으로 반동을 받아주는데 시속 18~24㎞의 속도가 나온다. 자전거가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과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습보는 경주마가 최고속도로 달리는 보법이다. 기수가 안장에 엉덩이를 붙이지 않고 체중을 말의 앞쪽으로 실은 상태에서 달리는데 최고시속 60㎞까지 나온다.
/글·사진(제주)=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