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노예무역


1781년 11월29일 대서양 망망대해. 노예 442명을 실은 배 한 척이 헤매고 있었다. 잘못된 계산과 지나치게 많은 승선인원으로 물과 보급품마저 거의 바닥난 상황. 이대로 놔두면 모두 죽는다는 생각에 선장은 병든 노예 142명을 산 채로 바다에 내던졌다. 선장은 나중에 살인죄에 따른 처벌 대신 보험사로부터 노예 1명당 30파운드의 배상을 받았다. 법원은 '위급한 상황에 말을 바다에 버린 것과 같은 행위'라는 충격적인 판결을 내렸다. 백인들이 '화물'로 여겼던 노예를 바다에 던져 죽인 '종(Zong)호 학살사건'의 전말이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대서양을 가득 채웠던 노예 무역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시작돼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참가로 번성했다. 형태는 전형적인 삼각 무역. 유럽에서 공산품과 총과 같은 물건을 넘기면 아프리카 통치자들이 인간 사냥을 허가했고 사로잡힌 노예들은 세네갈의 고리섬, 가나의 골든코스트 등을 거쳐 미국과 중남미에 팔려나가 사탕수수와 목화, 커피 등을 생산했다. 이 제품들이 다시 유럽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노예무역시스템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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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미국과 중남미로 끌려간 노예의 수는 대략 1,500만명. 하지만 약 400만명은 노예선 밑바닥에서 굶주림과 질병, 모진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가야 했다. '사람'이 아닌 '화물'이었기에 일어난 일. 이들이 미국과 중남미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죽지 못하고 일을 하며 재배한 사탕수수로 유럽, 특히 영국의 상류층은 '애프터눈티(afternoon-tea)'의 달콤함을 즐겼다. 도대체 인간의 목숨, 존엄성과 한낱 설탕 한 덩이와의 맞바꿈이라니….

△자메이카, 아이티를 포함한 중남미 카리브해 14개국이 최근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사죄 요구와 함께 피해 배상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마땅할 존엄성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인권조차 힘으로 짓눌렀던 만행에 대한 당연한 요구다. 일제시대 일본군의 성노리개로 살아야 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맺힌 절규를 수십년 들어온 우리에겐 동병상련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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