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일본서 떠돈 징용자 원혼' 77년만에 귀환

日시민단체, 희생자 유골·유품사진 전달"<br>日人이지만 동아시아인으로서 국가·민족 초월해 유골반환 작업중"

"수십년을 기다린 가족의 가슴이야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일본의 시민단체 `강제연행ㆍ강제노동 희생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 포럼' 대표 도노히라 요시히코(殿平善彦)씨는 9일 일본에 강제징용을 갔다가 희생된 조선인의 유골사진과 유품 복사본을 가족에게 전달하는 심정을 이같이 밝혔다. 1928년에 숨진 이들 강제징용 희생자의 혼은 77년간 구천을 떠돌다 사진으로 나마 고향에 돌아온 셈이다. 1970년대부터 강제징용 희생자의 유골을 찾아 반환운동을 벌이고 있는 도노히라대표는 최근 홋카이도(北海道) 무로란시(室蘭市)의 사찰인 고쇼지(光昭寺)에서 구연석(사망 당시 17세)씨 등 조선인 3명의 유골함 3개와 유품을 발견했다. 이 유골함과 유품은 일본이 패전한 직후 일본제철의 한 사원이 부산에 봉안하려고 했다가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국으로 오지 못하고 고쇼지에서 60년 간 보관돼왔었다. "이들이 희생당한 때가 쇼와(昭和) 20년, 즉 1928년인데 당시 모두 17∼18세의청소년이었어요. 유골함을 발견하는 순간 고향(한국)에 있는 부모의 고통이 느껴져반환하지 않을 수 없어서 사진을 찍어 한국에 왔습니다" 도노히라 대표가 이번에 유골함 사진과 함께 유가족에게 전달할 유품은 퇴직금명세서인 `퇴직급부금'이라는 서류사본과 기본급ㆍ능률수당 등 각종 수당이 적힌 월급명세서 사본, 가족과 주고받은 일본어로 쓴 편지 사본이다. 특히 그는 명함 크기의 희생자 증명사진과 도장을 카메라로 다시 찍어 유족에게 전달한다. 여기에는 `건강히 일하고 반드시 돌아오라'는 가족의 그리움을 담은 편지사본도 포함돼있다. 도노히라 대표가 가져온 증명사진은 77년 전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앳된 표정의 희생자의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퇴직급부금 서류엔 퇴직수당ㆍ조합적금ㆍ후생임금 등 명목으로 2천100엔 안팎의 퇴직금 액수가 적혀 있으며 월급명세서엔 20엔이 조금 넘은 금액이 수기로 남아 있다. 다행히 이들 강제징용 희생자 3명의 본적과 가족의 창씨개명 전 이름, 생년월일이 정확히 적혀 있어 80년 가까이 일본을 떠돌던 원혼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도록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도노히라 대표는 "이들은 고향에 돌아오길 간절히 원했지만 미군의 함포사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며 "나는 일본인이지만 동시에 동아시아인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초월해 아픔과 슬픔을 공감해 유골 반환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인 명부에서 확인한 조선인 희생자 3명의 유가족이 있는 경남 하동과사천(8일) 경남 진해(9일)를 잇따라 방문, 유가족인지 여부를 확인한 뒤 유골 발견경위를 설명하고 유골송환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다. 도노히라 대표는 7일 일제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를 방문해 유골 발견 경위와홋카이도 비바이탄광 츠도갱에서 1941년 3월18일 가스폭발 사고로 희생된 조선인 14명의 진상조사 등 6건의 진상규명 신청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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